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39장 방위산업과 기술주권: K-방산의 차세대 도전
39장 방위산업과 기술주권: K-방산의 차세대 도전
고도 3만 피트 상공에서 적기를 추적하던 순간, 레이더 경보 수신기가 울렸습니다. 적의 지대공 미사일 레이더가 나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손가락 하나로 채프와 플레어를 뿌리고, 전자전 장비를 가동시켰습니다. 기체가 반응했고,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전자전 장비 안에 들어 있는 칩이 해외에서만 공급된다면 어떨까요. 만약 그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 권한이 다른 나라 손에 있다면 어떨까요. 전쟁이 터진 상황에서 "부품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은 조종사에게 사형 선고와 다를 바 없습니다.
기술주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내 나라가 필요한 기술을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를 직접 고칠 줄 아는 정비사와, 매번 정비소에 맡겨야만 하는 운전자의 차이와 같습니다. 전투기의 세계에서 이 차이는 생사를 가릅니다. 전장에서 남의 허락을 기다려야 하는 무기는 무기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세계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서방의제재로 첨단 반도체 수입이 막힌 러시아 군수업체들이 냉장고와 세탁기에서 칩을 뜯어다 쓰기시작한 것입니다. 현대 전쟁에서 반도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전투기 한 대가 한 번의 출격에서 처리하는 데이터량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체 공군이 처리하던 양보다 많습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밀리초, 그러니까 천 분의 일 초 단위로 경로를 수정하며 날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반도체로 돌아갑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현대 전투기는 그저 알루미늄과 티타늄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반도체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미국은 칩스 액트(CHIPS Act)를 통해 520억 달러를 투입했고, 중국은 1,5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430억 유로 규모의 반도체 계획을 세웠습니다. 2025년 4월 미 국방부는 1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혁신 기금을 신설했습니다. 군용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안에서 완결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반도체는 이제 석유보다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되었습니다. 석유가 없으면 전차가 멈추지만, 반도체가 없으면 전투기의 두뇌가 멈춥니다.
한국의 방위산업, K-방산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K9 자주포가 폴란드 평원을 달리고, K2 전차가 루마니아에서 시험을 받고, FA-50이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하늘을 누빕니다. 2023년 한국은 세계 무기 수출 9위를 기록했고, 2025년에는 수출액이 2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김동현 본부장은 2025년 글로벌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과거에는 자주국방이 의무와 신념의 문제였습니다. 오늘날 그것은 기술 경쟁력과산업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는 도전이 숨어 있습니다.
K-방산의 강점은 빠른 납기와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이었습니다. 미국제처럼 비싸지도 않고, 러시아제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 무기 시장의 틈새를정확히 파고든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의 싸움은 차원이 다릅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 반도체, 인공지능,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자립이진짜 승부처입니다.
엔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투기의 심장이지요.
한국은 KF-21 보라매를 훌륭하게 만들어냈지만, 그 심장은 미국 GE사의 엔진입니다. 미국이엔진 공급을 멈추면 KF-21은 날지 못합니다.
엔진 개발은 어렵습니다. 섭씨 수천 도의 고온을 견디는 단결정 합금 기술, 정밀 주조 기술은전 세계에서 몇 나라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6세대 전투기 시대를 주도하려면, 이 벽을 넘어야 합니다. 남의 심장으로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2025년 2월 통과된 K-칩스법은 중요한 진전입니다.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15%에서 20%로, 중소기업은 25%에서 30%로 올랐습니다. 경기도에 4,710억 달러규모의 반도체 수퍼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도 진행 중입니다. 2030년까지 월 770만 개의웨이퍼를 생산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민간 반도체 역량을 국방 분야와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자전 라이브러리도 핵심입니다. 적 레이더가 나를 비출 때, 나는 그 레이더의 언어를 알아야합니다. 주파수, 펄스 반복 주기, 스캔 패턴. 이 정보가 담긴 것이 전자전 라이브러리입니다. 이걸 모르면 경보음은 그저 공포 영화의 배경 음악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영역은 외부 의존이 생기기 쉽습니다. 기밀이 걸린 분야라서 기술 이전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AESA 레이더를 독자 개발한 경험은 이 점에서 값진 자산입니다. 기술 이전을 거부당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공급망 보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투기는 수천,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집니다. 레이더, 임무 컴퓨터, 데이터링크, GPS 수신기, 디스플레이, 스위치 하나까지. 어느 한 부품이 막히면전체가 멈춥니다. 평시에는 납기 지연으로 끝나지만, 전시에는 비행 불가가 됩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외 방산업체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침투 사례 30건을 분석한 연구가 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공급망 말단의 탐지 능력이 부족하고, 현행 법적 체계가 능동적 방어를 지원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술 이전은 양날의 검입니다. 수출 계약을 따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위험도 따릅니다. 상대국이 산업 기반을 갖추고 있으면, 우리가 넘겨준 기술로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터키의 알타이 전차가 K2 플랫폼에서 이전된 기술로 개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제 알타이는 K2의 경쟁자입니다. 기술을 나누되, 핵심은 지키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도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능과 가격이 승부였습니다. 이제는"동맹의 정치"와 "업데이트 권한"이 승부입니다. 구매국들이 묻습니다. 이 전투기를 사면 어떤데이터가 어디로 가는가. 누가 암호 키를 쥐고 있는가. 누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가. 방위산업이 철강과 엔진의 사업에서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의 사업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상명 국방부 장관은 2025년 10월 이렇게 말했습니다. "K-방산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제시해야 합니다.”
방산 개발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전통적 방식은 큰 프로젝트를 오래 끌고 가며 마지막에 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래는 반대입니다. 작게 만들고, 빨리 날리고, 빨리 깨지고, 빨리 고칩니다. 기체는 안전과 인증 때문에 느릴 수밖에 없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렇게 느릴 이유가 없습니다. 항공기 인증과 전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분리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기체는 안정적으로, 전술 두뇌는 민첩하게.
기술 표준도 무기가 됩니다. 누가 인터페이스를 정하느냐, 누가 데이터 형식을 정하느냐, 누가유인기와 무인기 사이의 통신 규격을 정하느냐. 표준을 잡는 쪽이 생태계의 중심이 됩니다. 표준을 잡지 못하면, 우리는 늘 누군가의 규격에 맞춰 부품을 끼워 넣는 하청이 됩니다. 한국이진짜 주도권을 갖고 싶다면, "우리도 만들었다"가 아니라 "남들이 우리 규격으로 들어오게 했다"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험합니다. 거대 강국들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는 줄어들며, 병력은 감소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고슴도치 전략입니다. 작지만 치명적인 가시
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 가시가 바로 인공지능과 첨단 기술로 무장한 K-방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았듯이, 값싼 드론과 AI 소프트웨어가 거대한 전차 군단을 멈춰 세웠습니다.
결국 기술주권은 윤리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술의 문제입니다. 상대가 공급망을 공격하고, 위성을 흔들고, 사이버로 데이터를 오염시키는 시대입니다. 스스로 고치고 스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없는 전력은 유리 진열장 안의 모형과 다를 게 없습니다. 하늘에서 살아남는 것은기체가 아니라 체계입니다. 그 체계를 내 손으로 쥐는 것, 그것이 K-방산 차세대 도전의 본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