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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3장 고베대학, 경영수학과 헤비메탈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1부 뿌리 — 나라에서 워싱턴까지
3장 고베대학, 경영수학과 헤비메탈
김경진
고베(神戸)는 나라와 전혀 다른 도시입니다. 나라가 내륙의 분지이고, 역사의 흙 속에 잠든 조용한 곳이라면, 고베는 롯코 산(六甲山) 기슭과 오사카 만(大阪湾) 사이의 가파른 비탈에 낀 항구 도시입니다. 메이지 시대에 가장 먼저 문을 연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외국 상인들이 일찍 들어왔고, 그들이 지은 서양식 저택들이 기타노(北野) 언덕에 아직도 줄지어 서 있습니다. 거리에서 재즈 선율이 들려오고, 빵집에서 서양식 빵 냄새가 납니다. 도쿄도 오사카도 아닌, 고베만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국제적이면서도 작고, 세련됐으면서도 친숙한.
나라에서 자란 소녀가 1979년 봄 이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고베 항이 보이는 롯코 산 중턱에 고베대학(神戸大学) 캠퍼스가 있었습니다.
고베대학은 일본 국립대학 중에서도 서일본의 중요한 거점 대학입니다. 1902년 고베고등상업학교로 출발했습니다. 경영학, 경제학, 무역학이 이 대학의 역사적 강점입니다. 오사카대학, 교토대학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재계에서의 동문 네트워크는 강합니다. 대기업 경영진들 중 고베대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사나에가 선택한 전공은 경영학부 경영학과 경영수학(経営数学) 전공이었습니다. 경영수학은 이름 그대로 경영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통계학, 확률론, 최적화 이론, 의사결정론. 문과의 감각과 이과의 방법론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 숫자로 조직의 행동을 설명하고, 수식으로 최적의 선택을 도출하려는 시도.
왜 이 전공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본인의 직접적인 발언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이후 그녀의 정치 스타일을 보면 그 선택의 흔적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숫자로 말하는 정치인입니다. 국회 연설에서 GDP 성장률을 직접 계산해 제시합니다. 예산 삭감에 반대할 때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논거를 만듭니다. 법안 효과를 설명할 때는 정성적 서술 대신 계량적 지표를 씁니다. 이런 습관은 어디선가 시작됐을 것이고, 경영수학 전공이 그 출발점 중 하나였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통학이었습니다. 나라에서 고베까지, 기차를 타면 약 한 시간 남짓입니다. 그러나 대학교 4년 동안 하숙이나 자취 없이 집에서 다녔습니다. 왕복으로 하루 두 시간 이상. 부모가 도쿄 사립대학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논리였습니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범위. 나라 사람에게 고베는 그 범위의 끝이었습니다.
그 왕복 두 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우네비고 시절의 여섯 시간 통학이 독서와 사색의 시간이었다면, 대학 시절의 두 시간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1980년대 초 일본은 경제 호황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닛케이 평균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향해 오르고, 소니와 도요타는 세계 시장에서 승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재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1979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 미국 사회학자 에즈라 보겔(Ezra Vogel)은 일본의 기업 경영과 사회 조직을 분석하며 미국이 일본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을지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경영수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사나에는 그 자부심의 시대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풍경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経塾)을 선택하는 동기와 연결됩니다.
경음악부(軽音楽部). 입학 후 곧 이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드럼은 중학교 때부터 쳐온 악기였습니다. 부원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했고, 그 밴드의 장르는 헤비메탈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도 헤비메탈 붐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980년 영국에서는 아이언 메이든이 데뷔 앨범을 냈고, 블랙 사바스는 오지 오즈본(Ozzy Osbourne)과의 결별 후 새로운 보컬리스트와 함께 계속 활동 중이었습니다. 일본 메탈 밴드들도 하나둘 등장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고베대학 경음악부의 한 여학생이 드럼을 두드렸습니다.
헤비메탈 드럼의 테크닉적 요구는 상당합니다. 빠른 더블 베이스 드럼(두 발을 번갈아 쓰는 기법), 복잡한 박자 변환, 네 개의 사지가 각기 다른 패턴을 동시에 연주하는 능력.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수백 시간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경영수학 과목의 공부와 병행하면서 이것을 했습니다. 통학 시간도 포함해서.
밴드 이름은 '루이(RWEI)'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확한 활동 기간과 세부 내용은 확인이 어렵습니다. 다만 이 음악 경험이 평생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총무대신 시절, 기자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지금도 드럼 친다"고 답했습니다. 총리가 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토바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와사키 Z400GP(カワサキ Z400GP). 1982년에 출시된 이 오토바이는 당시 일본 바이크 문화에서 화제의 모델이었습니다. 400cc 4기통 엔진, 날렵한 스포츠 스타일.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모델이었지만, 여성 라이더는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고베대학을 통학하는 한 여학생이 이 바이크를 탔습니다.
고베대학에서 Z400GP를 탄다는 것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 행동은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는지를 보여줍니다. 타인의 시선. 여성에 대한 기대. 사회적 관습. 헤비메탈 드럼을 치고, 오토바이를 타는 여대생이 한편으로 경영수학을 공부하고, 다른 한편으로 나중에 경제 안보 법안을 기안하는 정치인이 됩니다. 이 조합은 어떤 단일한 프레임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1983년에서 1984년,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당시 일본 대기업들의 취업 선발 과정은 엄격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취업 트랙이 사실상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성적, 같은 스펙을 가져도 여학생에게 열린 직군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일반직(사무 보조)과 종합직(관리직 트랙)의 구분이 있었고, 여성은 대부분 일반직 지원자로 분류됐습니다. 1985년에 남녀고용기회균등법(男女雇用機会均等法)이 제정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사나에는 취업 선발 과정에서 일본경제신문사(日本経済新聞社) 지원을 포함한 여러 기업에 지원했습니다. 이 시기의 구체적인 취업 활동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공개된 기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결론은 알려져 있습니다. 대기업 취업 대신 마쓰시타 정경숙을 선택했습니다.
대학 4학년 여름, 처음으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를 만났습니다.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茅ヶ崎市)에 있는 마쓰시타 정경숙의 학생 모집 설명회에서였습니다. 파나소닉의 창업자이자 일본 경영학의 전설. 당시 이미 여든을 넘은 노인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사나에는 그 눈빛에 압도됐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날카로운 눈. 한 점의 흔들림도 없는 시선.
마쓰시타는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1990년을 기점으로 일본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황금기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 예측은 나중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버블 경제의 붕괴. 잃어버린 10년. 마쓰시타는 그것을 10년 앞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사나에는 결심했습니다. 이미 내정을 받아둔 취업처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포기하고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가겠다고 부모에게 말했습니다. 부모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머니 가즈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꿈이 있으면 되지 않겠어."
1984년 봄, 고베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했습니다. 경영수학 전공, 이가 다카시(伊賀隆) 제미나르. 졸업장을 손에 들고 고베를 떠났습니다. 나라의 딸이 항구 도시에서 배운 것들 — 수학적 사고, 드럼의 리듬, 바이크의 감각, 항구에서 불어오는 국제 도시의 공기 — 을 안고서.
다음 목적지는 가나가와현 치가사키시. 거기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세운, 정치가를 키우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1984년 4월, 마쓰시타 정경숙 5기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아직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고베대학 시절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한 단어로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경영수학을 공부하면서 헤비메탈을 연주하고,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이 조합은 어떤 단일한 이미지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사람의 본질과 가장 가깝습니다. 어떤 프레임에도 완전히 들어맞지 않는 사람. 보수 정치인이면서 헤비메탈 팬이고, 여성이면서 젠더 논리를 거부하며,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바이크를 타는 사람. 그 비정합성이 어쩌면 이 사람을 이해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1983년 졸업. 일본경제신문 취업 시도 실패. 파나소닉 관련 회사 채용 시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당시 일본 취업 시장에서 여성에게 열린 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습니다. "여성은 결혼하면 그만둔다"는 전제가 채용 담당자의 머릿속에 당연하게 있던 시대였습니다. 성별을 이유로 거절당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본인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좌절이 다음 선택을 만들었습니다. 마쓰시타 정경숙. 정치가를 키우는 곳. 그곳이 다음 목적지가 됐습니다.
헤비메탈과 오토바이. 그리고 경영수학. 이 세 가지가 공존하는 대학 시절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단서입니다. 기대와 다른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숫자와 음악과 속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정치가가 됐습니다.
졸업 이후의 실패 경험은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신문사에서, 기업에서 거절당한 경험. 그 경험이 마쓰시타 정경숙이라는 전혀 다른 선택을 만들었습니다. 실패가 없었다면 정치가 다카이치 사나에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좌절이 방향을 바꿔줬습니다.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가 정치가가 되는 길. 그 길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열렸습니다.
참고 자료
- 神戸大学 公式サイト — 経営学部: https://www.b.kobe-u.ac.jp/ - 高市早苗 Wikipedia (日本語):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高市早苗 大学時代 バンド活動」, nippon.com: https://www.nippon.com/ja/ - Sanae Takaichi, Wikipedia (English) — Early life: https://en.wikipedia.org/wiki/Sanae_Takaich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