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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9장 낙선의 수렁
유리 천장을 넘어서
제2부 등장 — 당선과 방랑
9장 낙선의 수렁
김경진
낙선은 정치인에게 다른 종류의 시간을 줍니다.
의원증이 없어집니다. 의원회관 사무실을 비워야 합니다. 국회 출입증을 반납합니다. 국회도서관, 의원 전용 식당, 본회의장 방청석으로 올라가는 특별 통로.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보좌관들은 다른 의원실을 찾아가거나, 의원 보좌 업무를 떠나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매일 연락하던 사람들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지역 행사에서 앞자리에 앉혀주던 사람들이 이제 한 발씩 뒤로 물러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이 경험을 두 번 했습니다. 1998년, 그리고 2003년.
첫 번째 낙선은 1998년 여름이었습니다. 자민당에 입당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참의원 나라현 선거구. 의석은 하나.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1998년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의 자민당에게도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1997년 소비세 인상이 경기를 더 냉각시켰습니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 전 총리가 내각을 이끌다 선거 패배로 사임했고, 오부치가 뒤를 이었습니다. 자민당은 전국적으로 부진했습니다.
나라현에서도 자민당 공인 후보인 다카이치는 패배했습니다. 자민당에 들어가서 맞은 첫 선거의 결과가 낙선이었습니다.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당내에 아직 뿌리가 없는 신입 의원이 당의 간판을 달고 혼자 맞붙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었습니다. 세습 의원도 아니고, 유력 파벌의 지원도 없었습니다.
낙선 이후 다카이치는 지역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의원이 아닌 상태에서 나라현을 돌았습니다. 유권자를 만났습니다. 정치 공부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 기회가 왔습니다.
제42회 중의원 총선거. 다카이치는 나라 제1구에서 소선거구 직접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긴키(近畿) 비례대표 블록을 통해 의석을 얻었습니다. 완전한 자력 당선이 아니었습니다. 당의 비례 명부 덕분에 돌아온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국회에는 돌아왔습니다. 3선이었습니다.
국회에 복귀한 다카이치는 정책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2001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자민당을 부수겠다"고 말한 총리. 우정 민영화, 규제 완화, 구조 개혁. 고이즈미의 슬로건은 신선했고, 지지율이 높았습니다. 다카이치는 그 흐름 속에서 2002년 제1차 고이즈미 개조 내각에서 경제산업 부대신(経済産業副大臣)으로 임명됐습니다. 첫 정무 직책이었습니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두 번째 낙선이 왔습니다.
2003년 11월 9일, 제43회 중의원 총선거. 나라 제1구. 상대는 민주당의 마부치 스미오(馬淵澄夫)였습니다. 마부치는 1967년생으로 다카이치보다 6살 어렸습니다. 교토대학 공학부 출신으로 민간 기업을 거쳐 정계에 들어온 신진 정치인이었습니다. 후에 국토교통대신까지 오르는 실력자였습니다.
소선거구의 1대 1 대결에서 다카이치는 졌습니다. 마부치가 더 많은 표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비례 부활도 실패했습니다. 완전한 낙선이었습니다. 2000년 비례로 돌아온 뒤 3년 만에 다시 국회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두 번째 낙선은 첫 번째와 달랐습니다. 더 무거웠습니다. 1998년 참의원 낙선은 자민당에 막 들어간 신입의 패배였습니다. 2003년은 달랐습니다. 경제산업 부대신까지 지낸 사람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직접 맞붙어 졌습니다. 비례로도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 정치 환경은 다카이치에게 불리했습니다. 고이즈미 자민당이 전성기였지만, 그것이 꼭 모든 자민당 후보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이즈미의 개혁 노선에 동조하는 민주당 후보들이 지지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부치는 그런 경우였습니다.
2003년 12월, 다카이치는 긴키대학(近畿大学) 경제학부 교수로 취임했습니다.
긴키대학.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 있는 사립대학. 경제학부의 교수 자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의 과목은 산업 정책론과 중소기업론이었습니다. 의원 시절 관심을 쏟았던 분야였습니다. 이론과 실무 경험이 합쳐지는 자리였습니다.
대학 강의실. 정장을 입은 젊은 학생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칠판 앞에 선 다카이치는 일본 산업 정책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고도 성장기의 통산성(通産省), 제조업 지원 정책, 중소기업의 역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아마도, 자신들 앞에 선 교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가 두 번이나 빼앗겼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낙선의 시간은 특별한 방식으로 사람을 만듭니다.
의원 시절에는 정보가 자동으로 들어옵니다. 관료들이 찾아와 보고합니다. 국회 도서관이 자료를 준비합니다. 보좌관들이 선택지를 정리해줍니다. 지역 유력자들이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의원이 아닌 사람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정보를 스스로 찾아야 하고, 판단도 혼자 해야 합니다.
다카이치는 그 시간을 공부로 채웠습니다. 경제학 문헌을 읽었습니다. 산업 정책 논문을 썼습니다. 강의 준비를 위해 일본 경제의 구조를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의원 시절에는 정책의 큰 그림을 보는 데 집중했다면, 이 시기에는 세부적인 논리를 정밀하게 따지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구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원 배지가 없어도 나라현을 돌았습니다. 지역 행사에 나갔습니다. 지역민들과 대화했습니다. 의원이 아닌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도 있었습니다. 관심이 식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3년 무소속으로 처음 당선될 때,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의원이었던 것도 아니고, 후원회 조직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자민당의 공인도 없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나라현 전체를 돌아다니며 표를 모아 당선됐습니다. 그 경험이 뿌리입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낙선의 시간이 남긴 것이 있다면, 아마도 이것일 것입니다.
조직 없이 혼자 서는 연습. 자민당 안에서도, 파벌 안에서도, 그녀는 항상 약간 바깥에 있었습니다. 강력한 파벌의 후광을 업고 올라간 의원들은, 그 파벌이 지지를 거두는 순간 혼자 서지 못합니다. 다카이치는 처음부터 파벌 없이 걸었습니다. 그 고독한 걸음이 나중에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의 낙선. 합산 2년 이상의 국회 밖 생활. 그 시간이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두 번 지고도 돌아온 사람은, 지지 않은 사람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는 방법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2004년, 긴키대학 교수실에 다카이치가 앉아 있습니다. 창밖으로는 오사카의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강의 준비를 하거나, 논문을 읽거나, 학생들의 레포트를 채점하거나. 하지만 그 시선의 끝은 언제나 나라(奈良)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선거는 언제 올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싸울 것인가. 그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2005년 봄, 전화가 왔습니다. 자민당 본부로부터. 다음 선거에서 새로운 역할이 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역할의 이름은 '자객 후보(刺客候補)'. 내용은 그 이름만큼이나 단호했습니다.
고이즈미의 우정 민영화. 그 싸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낙선의 경험이 정치인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낙선 후 정치를 포기합니다. 어떤 이들은 낙선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고 더 강해집니다. 다카이치는 후자였습니다. 긴키대학 교수 시절, 그녀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정책 이론을 체계화했습니다. 경제학적 지식이 이후 총무대신 시절의 정책 입안에, 경제안보 담당 대신 시절의 법안 작성에 직접 활용됐습니다. 낙선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재충전의 시간이었습니다.
낙선을 두 번 경험하고도 포기하지 않은 것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치에서 낙선은 단순한 선거 패배가 아닙니다. 낙선 후 재기에 성공한 의원의 비율은 낮습니다. 특히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한번 패하면 그 지역구에서의 기반이 크게 흔들립니다.
그러나 다카이치는 달랐습니다. 1998년 낙선 후 2000년에 비례로 돌아왔습니다. 2003년 낙선 후 2005년에 자객 후보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그 재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지역 활동을 멈추지 않은 것, 정책 공부를 계속한 것, 그리고 당내 네트워크를 꾸준히 유지한 것.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두 번의 낙선이 두 번의 귀환으로 이어졌습니다.
긴키대학 교수 시절이 단순한 생계 유지가 아니라 정치적 재충전의 시간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정책 언어를 다듬었고,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정책을 설명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 능력이 이후 총무대신으로, 경제안보 담당 대신으로 활동할 때 빛을 발했습니다.
낙선의 시간은 정치인에게 허약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내공을 보여줍니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낙선의 수렁에서 헤엄쳐 나왔습니다. 두 번 모두.
참고 자료
- 高市早苗 Wikipedia (日本語): https://ja.wikipedia.org/wiki/%E9%AB%98%E5%B8%82%E6%97%A9%E8%8B%97 - 다카이치 사나에 나무위키 생애: https://namu.wiki/w/%EB%8B%A4%EC%B9%B4%EC%9D%B4%EC%B9%98%20%EC%82%AC%EB%82%98%EC%97%90/%EC%83%9D%EC%95%A0 - 国会議員白書 高市早苗 선거 결과: https://kokkai.sugawarataku.net/giin/err02178.html - nippon.com — 高市早苗 총재까지의 타임라인: https://www.nippon.com/ja/japan-data/h02560/ - 近畿大学教職員組合 관련 트윗(2003년 낙선 후 교수 취임): https://x.com/unionkin/status/17187881883855589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