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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8장 21마일의 목줄
2026년 미국 이란 전쟁과 전 세계의 에너지 위기
8장 21마일의 목줄
김경진
제8장 21마일의 목줄
8.1 지리와 규모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34킬로미터입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직선거리보다 짧습니다. 맑은 날이면 이란 쪽 해안에서 오만의 무산담 반도가 보입니다. 이 좁은 틈 사이로 하루에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지나갑니다. 전 세계가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의 5분의 1, 바다를 통해 거래되는 석유의 4분의 1 이상입니다.
34킬로미터라는 숫자는 착시입니다.
해협 전체가 항해에 쓰이는 게 아닙니다. 바닥이 얕고 암초가 흩어져 있어서, 흘수가 깊은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 Carrier)이 지나갈 수 있는 수역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충돌을 막기 위해 이 해협 안에 분리통항제도(TSS, Traffic Separation Scheme)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차선과 나오는 차선이 각각 있는데, 한쪽 차선의 폭은 2마일, 약 3.2킬로미터입니다. 두 차선 사이에 충돌 방지용 완충 수역 2마일이 더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선박이 쓸 수 있는 바닷길의 폭은 양방향을 합쳐 6.4킬로미터 남짓입니다.
길이 330미터, 폭 60미터짜리 유조선에게 3.2킬로미터 폭의 수로가 얼마나 빡빡한 공간인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이런 배는 엔진을 끄고 멈추는 데만 수 킬로미터가 필요합니다. 이 수로에서 두 척이 나란히 지나가기 어렵습니다. 한 척씩 줄을 지어 통과해야 합니다. 24시간, 365일 내내 이 아슬아슬한 안무가 이어집니다.
이란의 해안선은 이 해협의 북쪽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자그로스 산맥의 끝자락이 바다까지 뻗어 있어서, 산비탈 곳곳에 대함 미사일 발사대와 해안포를 숨기기에 완벽한 지형입니다. 해협 안에는 이란이 군사기지로 쓰는 케슘(Qeshm) 섬, 호르무즈(Hormuz) 섬, 라라크(Larak) 섬이 있고, 아랍에미리트와 영유권 분쟁 중인 아부무사(Abu Musa) 섬과 대/소 툰브(Greater/Lesser Tunbs) 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섬들은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을 지근거리에서 감시하고 타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Islamic Revolutionary Guard Corps) 소속 고속정들은 이 섬들을 기지 삼아 수시로 출격합니다.
2024년 기준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 제품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이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의 수치입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이 규모는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물량의 84%가 아시아로 향했습니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69%를 받아갔습니다.
석유만이 아닙니다. 카타르는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 수출의 약 20%를 담당하는 나라인데, 카타르의 LNG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길은 오직 호르무즈 해협뿐입니다. 2025년 기준으로 카타르의 LNG 수출량은 연간 1,120억 입방미터를 넘었습니다. 이 가스는 한국과 일본의 겨울철 난방과 발전에 쓰이고, 러시아산 가스를 끊은 유럽의 에너지원으로도 쓰입니다. 해협이 닫히면 이 가스를 대체할 육상 수송 경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회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페르시아만 연안의 유전지대에서 홍해 연안의 얀부(Yanbu) 항구까지 이어지는 동서 파이프라인(East-West Pipeline)이 있습니다. 사우디 아람코(Aramco)는 이 파이프라인의 수송 능력이 하루 최대 700만 배럴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이미 약 200만 배럴이 평상시에 쓰이고 있어서, 여유 용량은 300만에서 500만 배럴 사이입니다. 아랍에미리트에는 아부다비의 유전에서 오만만 연안의 푸자이라(Fujairah) 항구로 직행하는 송유관이 있지만, 이것도 평상시 사용량을 빼면 여유가 크지 않습니다.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할 파이프라인이 한 줄도 없습니다.
모든 우회 파이프라인을 최대로 가동해도 대체 가능한 물량은 하루 350만에서 550만 배럴 수준입니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매일 약 1,400만 배럴의 원유가 갈 곳을 잃습니다. 그리고 LNG는 파이프로 우회할 수 없으므로 피해가 고스란히 쌓입니다.
이것이 호르무즈 해협의 물리적 현실입니다. 폭 34킬로미터, 실제 항로 폭 3.2킬로미터의 바닷길에 하루 2,000만 배럴이라는 지구의 생존선이 끼어 있습니다. 우회로의 총용량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8.2 반복되는 위기의 역사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과 서방에 보복하기 위해 석유 수출을 중단했습니다. 이른바 제1차 오일쇼크입니다. 당시 시장에서 사라진 석유는 전 세계 공급량의 약 6%였습니다. 6%가 빠졌을 뿐인데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는 12달러로 네 배 뛰었고, 선진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의 늪에 빠졌습니다. 석유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처음으로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1979년이었습니다.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미국의 동맹이었던 이란이 미국을 '거대한 사탄'이라 부르는 적대 국가로 변한 것입니다. 이란의 석유 생산이 급감하면서 제2차 오일쇼크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상업 수로가 아니라 서방을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수비대가 창설되고, 비대칭 해상 전력이 키워졌습니다. "우리의 이익이 침해당하면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독트린이 이때 태동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전장으로 변한 것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때였습니다. 1984년부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마비시키기 위해 이란 유조선과 카르크(Kharg) 섬 석유 터미널을 프랑스제 엑조세(Exocet) 미사일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란도 보복에 나섰습니다. 이라크를 지원하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조선을 혁명수비대 고속정과 기뢰, 헬기로 공격했습니다. '탱커전(Tanker War)'이라 불리는 이 8년간의 해상 전투에서 이라크는 283건, 이란은 168건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로이즈(Lloyd's)는 이 기간에 손상된 상선이 546척, 민간 선원 사망자가 약 430명이라고 추산했습니다.
페르시아만은 미사일과 기뢰가 난무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1987년, 쿠웨이트 정부는 기발한 수를 썼습니다. 자국 유조선에 미국 국기를 달아줄 수 있느냐고 미국에 요청한 것입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고심 끝에 이를 수락했고,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송하는 '어니스트 윌 작전(Operation Earnest Will)'이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군 호송 작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미 해군이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1987년 7월, 첫 번째 호송 임무에서 미국 국기를 단 유조선 브리지턴(Bridgeton)호가 이란이 깔아놓은 기뢰에 걸렸습니다. 1988년 4월에는 호위함 새뮤얼 B. 로버츠(USS Samuel B. Roberts)가 기뢰에 접촉해 용골이 부러지고 15피트짜리 구멍이 뚫렸습니다. 60여 명의 승조원이 부상했습니다. 미국은 보복으로 '사마귀 작전(Operation Praying Mantis)'을 발동해 이란 해군 함정과 석유 플랫폼을 타격했고, 이 과정에서 이란 해군 프리깃 2척이 격침 또는 대파되었습니다. 1988년 7월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USS Vincennes)호가 이란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해 격추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승객과 승무원 29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탱커전이 끔찍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 번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습니다. 미 해군의 압도적 화력이 이란의 봉쇄 시도를 찍어 눌렀고, 이란 자신도 해협이 막히면 자국 석유 수출길도 끊긴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보험료가 폭등하고 일부 선박이 공격당했지만, 석유의 흐름 자체는 유지되었습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그에 따른 걸프전(1991년) 때도 긴장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라크군이 페르시아만에 기뢰를 뿌려 놓았지만, 다국적군의 공군력과 해군력에 밀려 해협은 열린 채로 남았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이란은 핵 개발을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이 첨예해질 때마다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2012년에는 이란 해군이 해협에서 대규모 군사 훈련을 벌이며 봉쇄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2019년에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수 척이 공격받는 사건이 잇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란은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해협을 막으면 자국도 죽는다는 계산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주식 시장과 유가 시장은 이 패턴에 익숙해졌습니다. "호르무즈 위기는 결국 수사로 끝난다." 그것이 반세기에 걸쳐 학습된 경험이었습니다.
8.3 왜 이번에는 다른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고 이란 전역의 군사 시설을 타격하는 에픽 퓨리 작전(Operation Epic Fury)을 개시했습니다.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암묵적 한계선이 무너졌습니다. 정권의 수장을 잃은 이란에게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더 이상 자살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전면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잃을 것이 없어진 쪽의 선택지였습니다.
3월 2일, 혁명수비대 고위 관계자가 공식 발표했습니다. 해협은 폐쇄되었으며, 통과를 시도하는 모든 선박은 공격 대상이 된다고. 그리고 이란은 이 말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2월 28일 밤, 해협 인근에서 유조선 최소 3척이 피격되었습니다. 오만 연안에서 한 척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3월 1일, 유조선 스카이라이트(Skylight)호가 오만의 카사브(Khasab) 북쪽에서 발사체에 맞아 인도인 선원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습니다. 같은 날, 무인 수상정이 MKD 비욤(MKD VYOM)호를 공격해 기관실에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인도인 선원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월 2일 자정 무렵, 해협 안에서 자동식별장치(AIS, 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 신호를 송출하는 유조선은 한 척도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공격은 계속되었습니다. 3월 6일에는 피격 선박을 구조하러 온 예인선이 미사일 2발에 맞아 침몰했고, 선원 최소 3명이 실종되었습니다. 3월 7일에는 혁명수비대가 유조선 프리마(Prima)호를 드론으로, 미국 유조선 루이스 P(Louis P)호를 해협 안에서 드론으로 타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쿠웨이트 항구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소낭골 나미베(Sonangol Namibe)호가 수상 드론 공격을 받아 기름이 유출되었습니다. 해협에서 8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항구였습니다. 이란의 타격 범위가 해협 자체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3월 12일 기준으로 이란이 상선에 가한 공격은 확인된 것만 21건이었습니다. 합동해양정보센터(JMIC)의 집계로는 아라비아만,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 일대에서 23건의 해상 공격이 보고되었습니다. 선원 사망자는 최소 5명이었습니다.
이번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물리적 봉쇄의 방식입니다. 이란은 해협에 군함을 일렬로 세우는 식의 재래식 봉쇄를 하지 않았습니다. 드론, 대함 미사일, 무인 수상정, 고속정 공격을 조합한 비대칭 전술을 썼습니다. 여기에 기뢰가 더해졌습니다. CNN은 3월 10일, 이란이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확인된 기뢰의 수는 수십 발 수준이었지만, 이란은 소형 기뢰부설정의 80%에서 90%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어 수백 발의 추가 부설이 가능했습니다. 기뢰의 종류는 마함-3(Maham-3)과 마함-7(Maham-7)로, 자기 감지 및 음향 감지 센서를 탑재한 현대식 무기였습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3월 10일, 이란의 기뢰부설정 16척을 포함한 다수의 이란 해군 함정을 파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해군 분석가 파르진 나디미(Farzin Nadimi)는 이란의 소형 쾌속정 함대가 대부분 온존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기뢰 수십 발은 군사적으로는 소해정으로 제거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문제는 군사적 제거가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효과였습니다. 기뢰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1억 달러짜리 유조선의 발을 묶습니다. 선주도, 선장도, 선원도, 보험회사도 그 도박을 감수하려 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보험 시장의 반응입니다. 3월 1일과 2일, 국제 P&I(Protection & Indemnity) 보험클럽 12개 중 7개가 페르시아만, 오만만, 이란 영해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의 취소 통보를 발송했습니다. 가드(Gard), 스쿨드(Skuld),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 런던 P&I 클럽, 아메리칸 클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3월 5일부터 이 취소가 발효되었습니다.
전쟁 위험 보험은 이런 구조로 작동합니다. 선주는 연간 보험료를 내고 평시 전 세계 어디서든 보호를 받습니다. 다만 런던의 합동전쟁위원회(JWC, Joint War Committee)가 지정한 고위험 지역에 들어가려면, 그때마다 추가 보험료(AP, Additional Premium)를 내야 합니다. 전쟁 전에 이 추가 보험료는 선체 가치의 0.125%에서 0.2% 수준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이 비율은 하루 만에 1%로 뛰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1.5%에서 3%, 미국이나 영국이나 이스라엘과 연관된 선박은 5%를 물어야 했습니다. 150억 원짜리 LNG 운반선 기준으로 한 번 통과에 15억 원 이상의 보험료가 추가되는 셈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대한 총 보험 비용이 건당 100억에서 14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도 나왔습니다.
보험은 존재했습니다. 로이즈 시장 협회(LMA, Lloyd's Market Association)는 3월 23일 성명을 통해, 해협 통과에 대한 전쟁 보험이 여전히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88%의 로이즈 보험사가 인수 의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험이 "존재한다"는 뜻이었지, "배가 다닌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LMA는 같은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박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보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장과 선주가 승무원과 선박의 안전 위험을 너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선주 해리 바피아스(Harry Vafias)의 말이 상황을 요약합니다. 그의 가문은 유조선, 벌크선, LPG 운반선 약 100척을 소유하거나 관리합니다. 그는 로이즈 리스트(Lloyd's List)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보험도 없고, 아무도 그걸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피격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보험 없이 그 짓을 한다면 미친 사람이죠."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전쟁 전에는 하루 약 138척의 화물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3월 7일, 해협을 통과한 상업 선박은 단 1척이었고, 유조선은 0척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추적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25일까지 25일간 해협을 통과한 선박 총수는 142척이었습니다. 2025년 같은 기간에는 2,652척이 통과했습니다. 94.6%가 감소한 것입니다. 전쟁 전의 하루 통행량을 25일에 걸쳐 간신히 채운 셈입니다.
셋째, 이번에는 이란이 해협을 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식으로 다시 열었습니다.
이란은 전체 선박을 막되, 일부 선박에 한해서 통과를 허용하는 선별적 통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기존에 선박들이 쓰던 해협 중앙의 양방향 항로 대신, 이란 영해 안쪽, 케슘 섬과 라라크 섬 사이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습니다. 이 통로는 이란 본토에서 불과 20마일 거리, 이란 해군의 주력 기지가 있는 반다르 아바스(Bandar Abbas) 바로 앞입니다.
통과 절차는 이렇습니다. 선박 운항사는 혁명수비대와 연결된 중개인에게 선박의 국제해사기구(IMO) 번호, 화물 목록, 최종 목적지, 선원 명단, 소유주 정보를 제출합니다. 혁명수비대가 이를 검토합니다. 제재 대상 여부, 화물 내용, 지정학적 성격까지 따집니다. 승인이 떨어지면 인가 코드와 항로 지시가 나옵니다. 선박이 해협에 접근하면 혁명수비대가 초단파(VHF) 무선으로 인가 코드를 확인합니다. 확인이 되면 이란 호위정이 나와 라라크 섬 주변의 이란 영해를 통과하는 동안 배를 안내합니다. 인가 코드가 없으면 통과가 거부됩니다. 3월 중순,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관 알리레자 탕시리(Alireza Tangsiri)는 컨테이너선 셀렌(Selen)호가 "법적 절차 미준수와 허가 부재"로 되돌려 보내졌다고 발표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추적에 따르면, 3월 13일부터 25일까지 이 혁명수비대 통제 항로를 통과한 선박은 26척이었습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이집트, 한국 선적의 선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소유 유조선 브라이트 골드(Bright Gold)호가 3월 23일 이 항로를 지나갔습니다. 인도의 가스 운반선 2척과 인도행 사우디 유조선 1척도 통과를 허가받았습니다. 파키스탄 유조선은 3월 16일에 이란의 허가를 받아 통과했습니다. 3월 26일에는 말레이시아가 자국 선박의 통과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통행료가 있었습니다.
이란 의원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는 영국 기반 페르시아어 위성방송 이란 인터내셔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에는 비용이 듭니다. 당연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합니다." 금액은 건당 200만 달러, 약 30억 원이었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에 따르면, 최소 2척의 선박이 이 통행료를 중국 위안화로 결제했습니다. 결제는 중국의 해운 서비스 회사가 중개했고, 이란 당국에 위안화로 납부했습니다.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에 따르면, 중국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CIPS, 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의 3월 거래량은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란 의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원 모함마드레자 레자이 쿠치(Mohammadreza Rezaei Kouchi)는 혁명수비대 산하 통신사 파르스(Fars)와 타스님(Tasnim)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과 통제를 공식 법제화하고, 통행료 징수를 위한 법적 틀을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군사적 봉쇄는 전시 행위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사라집니다. 그런데 법률은 다릅니다. 이란 의회가 국내법으로 해협에 대한 주권과 통행료 징수를 규정하면, 휴전이나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도 그 법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란의 5개 종전 조건 중 하나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인정"이었습니다.
유엔 해양법 협약(UNCLOS, UN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은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제44조는 해협 연안국이 통과통항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이란은 1982년에 이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이 점을 근거로, 자국이 이 협약의 통과통항 규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 사무총장 자셈 모하메드 알부다이위(Jasem Mohamed al-Budaiwi)는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유엔 해양법 협약에 대한 침략이자 위반"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캠벨 대학교의 해양사학자 살 메르코글리아노(Sal Mercoglian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제법 어디에도 톨게이트를 세우고 선박을 뜯어먹으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러나 법적 논쟁은 법적 논쟁이고, 현실은 현실이었습니다. 해협을 물리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이란이었습니다. 미 해군이 아무리 강해도, 이란의 1,000마일에 달하는 해안선, 산악 지형에 숨겨진 이동식 대함 미사일, 소형 쾌속정 함대, 기뢰 부설 능력을 모두 제압하고 상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퇴역 미 육군 대령 리처드 앨런 윌리엄스(Richard Allen Williams)는 라디오 자유유럽(RFE/RL)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호르무즈를 군사적으로 재개방하고 유지하는 쉬운 방법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로이즈 리스트의 평가도 냉정했습니다. 가장 낙관적인 호송 시나리오에서도 해협 통행량은 정상의 10% 수준에 그칠 것이며, 600척 이상의 적체 선박을 해소하는 데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Fatih Birol)은 이번 사태를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루 약 1,500만 배럴의 원유와 500만 배럴의 석유 제품이 페르시아만 안에 갇혔습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저장 탱크가 차오르면서 생산을 줄여야 했습니다. 브렌트유는 3월 8일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고, 이후 126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전쟁 전 73달러 수준에서 40% 이상 오른 것입니다.
1973년에는 공급의 6%가 빠졌을 뿐인데 유가가 네 배 뛰었습니다. 1980년대 탱커전에서는 해협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습니다. 2026년에는 세계 석유 공급의 20%가 차단되었고, 해협 통행량이 95% 감소했으며, 대체 경로의 총용량은 빠져나간 물량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과거의 위기들이 시스템 안에서의 발작이었다면, 2026년 3월의 호르무즈 해협은 시스템 자체의 숨통을 조이는 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손은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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