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재
책으로 읽는 AI서재
한 권을 고르고, 목차에서 차례대로 읽을 수 있게 정리했습니다.
PDF 다운로드 책
다국어로 읽는 대학생 교양 인공지능
한국어 원문과 외국어 번역을 함께 실은 유학생용 교재입니다. 각 책 소개 페이지에서 PDF를 받을 수 있습니다.
[AI서재] 9장 정교회와 조지아인의 DNA
9장 정교회와 조지아인의 DNA
가. 교회가 지배하는 사회적 영향력
조지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의 신앙을 이해해야 합니다. 트빌리시의 어느 거리를 걷든, 카헤티의 포도밭 언덕을 넘든, 스바네티의 첩첩한 산골 마을에 들어서든, 당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황금빛 돔을 인 대성당,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수도원, 마을 어귀의 작은 예배당. 조지아 정교회(Georgian Orthodox Church)는 이 나라의 풍경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조지아인들에게 정교 회는 종교를 넘어선 존재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영혼이자, 5천 년 역사의 파수꾼이며, 수많은 침략과 지배 속에서도 자신들을 '조지아인'으로 남게 해 준 최후의 보루입니다.
포도나무 십자가의 탄생
조지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야기는 한 여인에게서 시작됩니다. 성녀 니노(St. Nino). 4 세기 초, 카파도키아 출신의 이 젊은 여성은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꿈속에서 성모는 니노에게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십자가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베리아(고대 조지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 이 십자가의 힘으로 그 땅에 신앙의 깃발을 세우게 될것이다." 니노는 잠에서 깨어났고,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포도나무 가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가지들을 묶어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유연한 포도나무는 단단히 고정되지 않아 양쪽 팔이 아래로 처졌습니다. 이 독특한 형태의 십자가가 바로 오늘날 조지아 정교회의 상징인 '포도나무 십자가(Grapevine Cross)'입니다.
니노는 320년경 이베리아 왕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수도 므츠헤타(Mtskheta)에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방인 여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니노가 병자들을 치유하고 기적을 행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나나 왕비가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찾아왔습니다. 니노는 기도했고, 왕비는 나았습니다. 왕비는 즉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러나 미리안 3세 왕은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조상 대대로 믿어 온신들을 섬겼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던 왕이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질린 왕은 조상의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니노의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어둠이 걷히고 빛이 돌아왔습니다. 왕은 성으로 돌아와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337년(일부 기록에는 326년), 미리안 왕은 기독교를 이베리아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조지아는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는 현재 트빌리시의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수 세기 동안 페르시아 침략, 오스만의 위협, 러시아 제국의 합병 등격동의 역사를 거치며 여러 곳을 떠돌았습니다. 1802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조지아에 반환한 이래, 이 십자가는 조지아 민족의 가장 성스러운 유물로 숭배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지아 국기에 그려진 네 개의 작은 십자가는 바로 이 포도나무 십자가를 양식 화한 것입니다.
천 칠백 년의 저항
조지아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 제였습니다. 조지아는 지정학적으로 거대한 제국들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입니다. 동쪽에는 페르시아가, 남쪽에는 아랍과 오스만이, 북쪽에는 러시아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세력이 번갈아가며 조지아를 침략했고, 정복했고,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조지아인들은 무엇을 빼앗겨도 신앙만은 지켰습니다.
7세기 아랍의 침략 때, 무슬림 정복자들은 조지아인들에게 개종을 강요했습니다. 거부하는 자들은 처형되었습니다. 트빌리시의 므트크바리 강변에서 1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이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강물 위에 십자가 아이콘을 띄워 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 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강물에 뛰어들어 아이콘에 입을 맞추며 죽어 갔습니다. 오늘날 트빌리시 시민들이 매년 5월 13일 '10만 순교자의 날' 을 기념하는 것은 바로 이 사건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의 지배 시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페르시아는 조지아를 속국으로 삼고 조로 아스터교나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종용했습니다. 일부 귀족들은 타협했지만, 대다수의 평민들은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교회는 그들의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성직자들은 조지아 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찬송가를 짓고,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수도원은 학교가 되었고, 교회는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은 곧 언어를 지키는 것이었고, 언어를 지키는 것은 곧 민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14세기, 몽골의 티무르가 조지아를 유린했을 때, 조지아인들은 민족의 보물과 성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해발 2,170미터의 카즈벡 산 절벽 위에 있는 게르게티 삼위일체 교회(Gergeti Trinity Church)였습니다. 구름 위로 솟아 있는 이외딴 교회에 그들은 성녀 니노의 십자가를 비롯한 귀중한 유물들을 숨겼습니다. 적군이 아무리 강해도, 저 높은 곳까지는 쉽게 오르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게르 게티 교회는 조지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지아인들 에게 이곳은 관광지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성지입니다.
소비에트의 무신론과 부활
조지아 정교회가 직면한 가장 극심한 박해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독교 문화권인 러시 아로부터 왔습니다. 1801년 러시아 제국이 조지아를 합병한 후, 러시아 정교회는 조지아 교회의 자치권(Autocephaly)을 박탈했습니다. 조지아 총대주교좌는 폐지되었고, 조지아 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의 관구(Exarchate)로 격하되었습니다. 조지아어 예배는 금지되거나 제한되었고, 러시아인 성직자들이 주요 직책을 차지했습니다. 교회가 곧 민족 정체성이었던 조지아인들에게 이것은 영혼의 식민지화였습니다.
그러나 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21년 소비에트 적군이 조지아를 점령했습니다. 공산당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교리에 따라 교회를 조직적으로 탄압했습니다. 수백 개의 교회가 파괴되거나 창고, 공장, 감옥으로 전용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성직 자가 처형되거나 시베리아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종교 교육은 금지되었고, 신앙을 공개 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회적·직업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지아인들의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할머 니들은 손주들에게 몰래 기도문을 가르쳤고, 마을 노인들은 폐허가 된 교회 터에서 은밀히 촛불을 밝혔습니다. 세례는 비밀리에 행해졌고, 성경은 손으로 베껴져 전해졌습니다. 70년 간의 무신론 통치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조지아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 정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부활했습니다. 억눌렸던 신앙심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습니다. 폐허가 된 교회들이 복원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성당들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이 트빌리시의 성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 조지아어로 '사메바'Sameba)입니다. 2004년 완공된 이 대성당은 남코카서스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입니다. 101미터 높이의 이 거대한 성당은 트빌리시 어디에서든 보입니다. 조지아인들에게 사메바 대성당은 단순한 건축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비에트의 무신론을 극복하고 이뤄낸 영적 부활의 기념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영향력
오늘날 조지아 인구의 약 83~85%가 정교회 신자입니다. 이 숫자만으로는 교회의 영향력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지아 정교회는 단순히 신자들의 종교 기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 정체성을 정의하고, 사회적 규범을 제시하며, 정치적 의사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힘입니다.
2021년 국제공화연구소(IRI)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아 총대주교 일리아 2세(Patriarch Ilia II)는 88%의 지지율로 조지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공인이었습니다. 대통령, 총리, 그 어떤 정치인도 이 수치에 근접하지 못했습니다. 1977년부터 총대주교직을 수행해 온 일리아 2세의 초상화는 정부 청사는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 상점,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조지아인들에게 그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국부(國父)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교회의 영향력은 정치 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헌법상 조지아는 세속 국가입니다. 그러나 2002년 체결된 '협정(Concordat)'을 통해 정교회는 다른 종교 단체들과 차별화된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정부는 정교회에 상당한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교회는 세금 면제를 비롯한 다양한 특혜를 받습니다. 2024년에는 총리 명령에 따라 총대주교청 교육문 화사업 발전기금에 3,500만 라리(약 150억 원)가 배정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교회를 찾습니다. 총대주교의 축복 사진은 선거 포스터의 단골 소재입니다. 2012년 총선에서 억만장자 비지나 이바니슈빌리(Bidzina Ivanishvili) 가 이끄는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 당이 승리를 거둔 데에는 정교회의 암묵적 지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정부와 총대주교청 사이의 이러한 유착 관계는 세속주의와 법치주의의 토대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교회는 사회적 쟁점에서도 강력한 목소리를 냅니다. 가장 첨예한 갈등 지점은 성소수자(LGBTQ+) 권리 문제입니다. 조지아 정교회는 동성애를 "치명적인 죄"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대합니다. 2021년 일리아 2세 총대주교는 부활절 서신에서 동성 결혼은 "강력한 금기"이 며, "인간을 정의하는 전통적 정체성인 '남자'와 '여자', '가족의 가치'가 지워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같은 해 7월, 트빌리시에서 프라이드 행진이 계획되었을 때, 교회와 보수 단체 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시위대 일부는 프라이드 조직 사무실과 언론인들을 폭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강경한 태도는 조지아의 유럽연합(EU) 가입 노력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EU는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성소수자 권리 보호를 포함한 인권 기준 충족을 요구하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와 보수 세력의 반대로 조지아 정부는 이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4년 정부는 EU의 반(反)차별법 요구에 대응하여 "가족 가치 및 미성 년자 보호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사실상 LGBTQ+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종교적 관용의 전통과 한계
조지아 정교회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조지아는 역사적으로 종교적 관용의 땅 이기도 했습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Old Tbilisi)를 거닐면 그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지아 정교회 성당,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유대교 회당(시나고그), 이슬람 모스크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수 세기 동안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해 온 실크로드 교차점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서부 해안 도시 바투미(Batumi)는 이러한 다양성의 또 다른 예입니다. 아자라(Ajara) 자치 공화국의 수도인 바투미에는 정교회, 가톨릭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유대교 회당, 그리고 이슬람 모스크가 모두 한 도시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로 무슬림 인구가 상당했던 이 지역은 종교 간 공존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의 전통이 최근 들어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전통적 가치 수호"가 강조되면서, 소수 종교와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정교회 내부에서도 반(反)서구, 반(反)자유주의 성향의 강경파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들은 서구의 세속적 가치관을 "유사 자유주의 이데올로기(pseudo-liberal ideology)"라 부르며 배격합니다.
조지아인에게 정교회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일요일에 가는 예배당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DNA에 각인된 정체성입니다. 수천 년의 침략과 지배,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그들을 '조지아인'으로 남게 해 준 영적 고향입니다. 트빌리시 버스 안에서 창밖의 교회를 향해 성호를 긋는 노인, 시골 마을의 폐허 같은 예배당에 촛불을 켜는 농부, 대학가 카페에서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면서도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건 젊은이. 그들 모두에게 정교회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입니다.
그러나 이 강력한 끈은 때로 조지아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묶어 두기도 합니다. 유럽을 향한 열망과 전통 가치의 수호 사이에서, 조지아 정교회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조지아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나. 수프라 문화, 단순한 식사가 아닌 공동체의 의례
조지아를 여행하는 사람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수프라를 하는데, 같이 가시죠." 처음에는 '수프라(Supra)'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저 저녁 식사 초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끝없이 이어지는 건배와 노래, 눈물과 웃음 속에서 새벽을 맞이하고 나면 깨닫게 됩니다. 수프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조지 아인의 영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식탁보'에 담긴 우주
'수프라'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식탁보'를 뜻합니다. 페르시아어 '소프레(sofre)'에서 유래한 이 말은 원래 음식을 차려 놓는 천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지아에서 수프라는 전통 연회 자체를 의미합니다. 결혼식, 세례식, 장례식, 생일, 국경일, 추모일은 물론이고 손님을 맞이하거나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까지, 조지아인의 삶에서 중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수프라가 열립니다.
2017년 조지아 정부는 수프라 전통을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아인들에게 수프라는 '유산'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문화입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전시된 골동품이 아니라 매일 밤 누군가의 집에서, 식당에서, 포도밭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삶 그 자체입니다.
수프라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되었을까요? 언어학자 레반 브레가제(Levan Bregadze)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수프라는 19세기 초 러시아 병합 이후에 확립되어 19세기 말에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건배를 뜻하는 조지아어 '사드게그르젤로(sadγegrdzelo, 직역하면 '오래 살기를 위하여')'라는 단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도 19세기 중반입니다. 그러나 역사학자 존 페리(John R. Perry)는 수프라의 뿌리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연회 문 화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16~17세기 사파비 이란의 영향을 받은 조지아 궁정이 페르시아식 '소흐밧(sohbat, 친교의 자리)'과 '소프레(연회)'를 수용하여 자신들의 방식으로 발전시켰 다는 것입니다.
어떤 학설이 맞든, 수프라가 조지아 문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기원전 7 세기의 청동 조각상 중에는 뿔잔(칸치, kantsi)을 높이 든 인물상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 조각상은 '타마다 상(Tamada statue)'으로 불리며, 트빌리시 시내 여러 곳에 복제품이 세워져 있습니다. 3천 년 전에도 조지아인들은 모여 앉아 술잔을 들고 누군가의 건강을 빌었다는 증거입니다.
타마다: 식탁의 지휘자
모든 수프라에는 반드시 '타마다(Tamada)'가 있습니다. 타마다는 연회의 사회자이자 지휘 자입니다. 그러나 이 말로는 타마다의 역할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지아인들은 "타마
다는 식탁의 독재자"라고 농담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독재자보다는 선생님, 또는 신부(神父)에 가깝습니다. 좋은 타마다는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심리학자이자 엔터테이너입니다.
타마다의 자격 요건은 까다롭습니다. 첫째, 말을 잘해야 합니다. 뻔한 내용도 독창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고의 타마다들은 즉흥 시인에 가깝습니다. 둘째, 조직력이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떤 건배를 제안할지, 노래와 춤을 언제 끼워 넣을지, 연회의 전체 흐름을 조율하는 것이 타마다의 책임입니다. 셋째, 감수성이 뛰어나야 합니다. 식탁의 분위기를 읽고, 모든 참석자가 소외되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넷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밤이 깊어지고 술이 거나해지면 사람들의 주의력이 흐트러집니다. 이때 타마다는 단호하게 질서를 잡아야 합니다. 다섯째, 술을 잘 마셔야 합니다. 타마다는 모든 건배에서 잔을 비워야 하지만,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타마다는 치욕입니다.
가족끼리만 모인 소규모 자리에서는 보통 집안의 어른이 자연스럽게 타마다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는 가족이 미리 타마다를 선정합니다. 말솜씨가 좋고 이 역할을 즐기는 친척이나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친구 들끼리 모이는 자리에서는 참석자들이 즉석에서 타마다를 정하기도 합니다. 보통 가장 연장자가 "오늘 저녁은 코테가 타마다를 맡으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 다른 사람들이 동의를 표하고, 지명된 사람이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가 타마다가 됩니다.
수프라가 시작되면 타마다의 첫 번째 건배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타마다를 위한 건배가 있습니다. 타마다를 제안한 사람(보통 집주인이나 최연장자)이 일어서서 "오늘 저녁 타마다를 맡아 주신 코테를 위하여!"라고 외치면, 모든 참석자가 잔을 들고 타마다 에게 건배합니다. 이것이 수프라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입니다.
건배의 순서와 예술
수프라에서 건배는 그냥 "건강을 위하여!"라고 외치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설이고, 기도이며, 때로는 시(詩)입니다. 타마다가 주제를 제시하면, 그는 그 주제에 대해 길고 아름다운 말을 늘어놓습니다. 역사적 일화, 문학 작품의 인용, 철학적 성찰, 개인적인 추억이 섞여 들어갑니다. 짧으면 2~3분, 길면 10분이 넘는 연설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건배의 주제에는 대략적인 순서가 있습니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인 수프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God)에게: 첫 번째 건배는 신에게 올립니다. 조지아의 기독교적 전통을 반영하는 것이 지만, 무신론자도 이 건배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평화(Peace)를 위하여: 조지아의 격동적인 역사를 생각하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
조국(Georgia)을 위하여: 사카르트벨로(Sakartvelo), 조지아인들이 자국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표현하는 건배입니다.
조상(Ancestors)에게: 세상을 떠난 선조들을 기리는 순간입니다. 이 건배에서는 모든 참석 자가 일어서서 침묵 속에 잔을 비웁니다.
부모(Parents)를 위하여: 살아 계신 부모님, 또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형제자매(Siblings)를 위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건배입니다.
여성(Women)을 위하여: 조지아 문화에서 여성,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역할은 매우 신성시됩니다.
자녀(Children)를 위하여: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을 담은 건배입니다.
손님(Guests)을 위하여: 수프라에 참석한 손님들을 환영하고 축복하는 건배입니다.
우정(Friendship)을 위하여: 친구들 사이의 유대를 확인하는 건배입니다.
이 외에도 사랑, 건강, 행복, 성공 등 다양한 주제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결혼식이면 신랑 신부를 위한 건배가, 장례식이면 고인을 추모하는 건배가 중심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타마다만 건배를 제안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참석자들은 타마다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술을 마시거나 건배를 할 수 없습니다.
타마다가 건배사를 마치면, 그는 '알라베르디(alaverdi)'를 선언할 수 있습니다. 알라베르디는 다른 참석자에게 발언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지명된 사람은 타마다가 제시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덧붙입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같은 주제에 대해 말을 하고, 마지막에 모두가 "가우마르조스!(Gaumarjos!, 승리를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비웁니다. 이 과정이 한 번의 건배에서 일어납니다. 밤새 스무 번, 서른 번의 건배가 이어진 다면, 참석자들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공유하게 됩니다.
와인: 성스러운 매개체
수프라에서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 산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성스러운 매개체입니다. 조지아인들에게 포도나무는 '생명의 나무'이자 성모 마리아의 상징입니다. 성녀 니노가 포도나무 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전설은 와인과 신앙 사이의 깊은 연결을 보여 줍니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국입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조지아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빚기 시작한 것은 약 8,000년 전입니다. 전 세계 포도 품종 약 1,500
종 중 500종 이상이 조지아 토착 품종입니다. 르카치텔리(Rkatsiteli), 사페라비(Saperavi), 므츠바네(Mtsvane), 키시(Kisi) 등 이국적인 이름의 포도들이 조지아의 포도밭에서 자랍니다.
전통적인 조지아 와인은 '크베브리(Qvevri)'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양조됩니다. 크베브리는 땅속에 묻는 거대한 점토 항아리입니다. 포도를 껍질, 씨, 줄기와 함께 크베브리에 넣고 밀봉하면, 땅속의 일정한 온도에서 자연 발효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만든 와인은 호박색을 띠어 '앰버 와인(Amber Wine)'이라고도 불립니다. 2013년 유네스코는 크베브리 양조법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조지아 가정에서 와인 저장고인 '마라니(Marani)'는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집니다. 마라니에서 와인을 빚고 숙성시키는 것은 가장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수프라에서 와인을 따르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메리키페(Meriqipe, 와인을 따르는 사람)'라는 별도의 역할이 있으며, 타마다는 자신의 잔에 직접 와인을 따르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전통적인 수프라에서는 모든 참석자가 건배 때마다 잔을 비우는 것이 원칙입니다. 타마다가 "볼로 므데!(Bolo mde!, 끝까지!)"라고 외치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셔야 합니다. 잔 에 술을 남기는 것은 타마다에 대한 무례이자 건배 대상에 대한 불경입니다. 이 때문에 수 프라에서는 엄청난 양의 와인이 소비됩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조지아인들이 취하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점입니다. 많이 마시되 품위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수프라에서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
조지아에는 "스투마리 그메르티스아간 아리스(Stumari ghvtisagan aris)"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조지아인의 환대 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수프라는 이 환대 정신이 가장 순수하게 표현되는 장소입니다.
조지아인들은 낯선 여행자라도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초대를 받으면, 손님은 왕처럼 대접받습니다. 식탁에는 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차푸리(Khachapuri, 치즈를 넣은 빵), 힌칼리(Khinkali, 고기 만두), 므츠바디(Mtsvadi, 꼬치구이), 바드리자니(Badrijani, 호두 소스를 넣은 가지 롤), 포크발리(Pkhali, 야채 페이스트) 등 조지아의 대표 요리들이 접시 위에 접시가 쌓이도록 올라옵니다. 음식이 떨어지면 주인은 즉시 보충합니다. 수프라에서빈 접시가 보이는 것은 수치입니다.
건배사에서도 손님은 빠지지 않습니다. 타마다는 반드시 손님을 위한 건배를 제안하며, 이때 손님의 건강, 행복, 여정의 안전을 빌어 줍니다. 손님이 여러 명이면 한 명씩 차례로 건배를 받습니다. 외국인 손님이 있으면 타마다는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하여 멋진 건배사를 지어 냅니다. 이런 환대 앞에서 손님이 해야 할 일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 이고, 자신도 건배에 참여하여 주인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폴리포니: 영혼의 화음
수프라가 무르익으면 어디선가 노래가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먼저 선율을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합니다. 악기 반주 없이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층층이 쌓여 복잡한 화음을 이룹니다. 이것이 조지아의 전통 다성 음악, 폴리포니(Polyphony)입니다.
2001년 유네스코는 조지아 폴리포니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조지아 폴리포니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풍부한 다성 음악 전통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1977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 올린 보이저 우주 탐사선에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보내는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습니다. 이 레코드에 담긴 27곡의 음악 중 하나가 바로 조지아 폴리포니 곡 '차크룰로(Chakrulo)'입니다.
수프라에서 노래는 단순한 여흥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영적 교감입니다. 조지아인 들은 노래를 통해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배가하며, 서로의 영혼을 어루만집니다. 건배사가 언어로 전달하지 못하는 감정을, 노래는 선율로 전달합니다. 수프라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음식의 맛이나 와인의 향기가 아니라, 그날 밤 함께 불렀던 노래의 화음입니다.
공동체의 치유와 통합
수프라의 본질적인 기능은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수프라는 단순히 즐거운 파티가 아닙니다. 그것은 갈등을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공동체의 가치관을 재확인하는 의식입니다. 미국의 조지아 연구자 케빈 투이트(Kevin Tuite)는 수프라를 "일종의 집단 치료(group therapy) 세션"에 비유했습니다.
수프라에서는 평소에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건배사의 틀 안에서, 와인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감정을 꺼냅니다. 오래된 오해가 풀리고, 묵은 원한이 녹아내립니다. 가족 간의 불화, 이웃 간의 갈등, 심지어 마을 공동체 내의 분쟁 까지도 수프라를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마다의 지혜로운 건배사가 갈등의 당사자들을 한 식탁에 앉히고, 같은 잔으로 술을 마시게 하며, 결국 화해에 이르게 합니다.
장례식 후에 열리는 수프라(조지아어로 '켈레키', kelekhi)는 슬픔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고인을 추모하는 건배사를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상실의 아픔을 함께 견딥니다. 잔에 남은 마지막 몇 방울의 와인을 빵 위에 뿌리는 것은 고인에게 바치는 제물입니다. 이 의식을 통해 죽은 자는 산 자의 기억 속에 살아남고, 산 자는 삶을 계속할 힘을 얻습니다.
오늘날 도시의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상업화된 수프라, 관광객을 위한 체험용 수프라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건배의 길이와 형식이 간소화되고, 젊은 세대는 '인스타 그램에 올릴 만한 조지아 음식 파티' 정도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족과 마을 단위의
전통적인 수프라에서는 여전히 엄격한 예절과 상징 체계가 유지됩니다. 전통과 현대 소비 문화가 공존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조지아 수프라의 현실입니다.
수프라는 한 테이블 위에서 재연되는 작은 조지아 사회입니다. 정교회적 가치, 가부장적 질서, 공동체적 연대가 음식과 와인, 건배와 노래 속에 녹아 있습니다. 수프라에 초대받아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와인을 마시는 것은 조지아라는 나라의 영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다. 전통 가치와 서구화 사이의 세대 갈등
2024년 5월, 트빌리시의 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손에는 조지아 국기와 유럽연 합(EU) 깃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럽을 선택하라!", "러시아에는 '노'라고 말하라!" 라고 외쳤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던 '외국 영향력 투명성법(일명 외국 대리인 법)'에 반대하는 시위였습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대응했습니다. 수백 명이 연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시위의 특징은 참가자들의 나이였습니다. 'Z세대(Gen Z)', 또는 '주머 세대(Zoomers)'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들이 시위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처음 으로 정치 시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조직적 동원이 아니 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구호는 단순히 특정 법안에 대한 반대를 넘어섰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빼앗지 마라." 이것은 세대의 선언이었습니다.
두 세계 사이에 선 나라
오늘날 조지아 사회는 두 개의 힘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 가치가 있습니다. 정교회 신앙, 가족 중심주의, 보수적인 성 역할, 공동체적 유대. 다른 한쪽에는 유럽을 향한 열망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인권, 법치, 민주주의, 다양성의 존중. 이 두 힘은 때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점점 더 자주 충돌합니다. 그리고 이 충돌은 세대 간의 갈등으로 나타납니다.
조지아 헌법은 유럽-대서양 통합을 국가 목표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지아 국민의 80~85%가 EU 가입을 지지합니다. 2023년 12월, 유럽위원회는 조지아에 EU 후보국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조지아인들에게 '유럽'은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번영과 안정,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합니다. 러시아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나라가 되는 길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지아 사회의 상당 부분은 '서구적 가치'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있습니다. 정교회는 개인주의, 세속주의, 성소수자 권리 등을 "유사 자유주의 이데올로기(pseudo-liberal ideology)"라 부르며 "조지아의 전통과 신앙을 위협하는 외래 문화"로 규정합니다. 집권 여당인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은 이러한 보수적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들은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서구의 자금을 받아 교회를 공격하고, LGBT 선전을 통해 가족 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 세대: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
2024년 외국 대리인 법 반대 시위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위 참여와 지지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은 18~34세의 젊은 층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조지아의 미래는 명백히 유럽
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유럽인'으로 정의합니다. 2024년 카네기유럽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지아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외친 구호들은 외교 정책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평등", "통합" (조지아 사회의 양극화 극복), "기본적 인간 자유의 존중", "모두를 위한 보편적이고 질 높은 교육", "성평등"…… 이것은 그들이 꿈꾸는 삶의 방식에 대한 선언이 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친유럽 성향에는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2003년 '장미 혁명(Rose Revolution)' 이후 조지아는 강력한 친서방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영어 교육이 강화되었 고, 서방 국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젊은이 들이 사회 곳곳에 퍼졌습니다. 2008년 러시아와의 5일 전쟁은 이 세대에게 결정적인 트라 우마로 남았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공포와 분노, 그리고 서방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의식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이 세대는 이전 세대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정보와 가치관에 노출됩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직접 봅니다. 조지아의 현실과 유럽의 이상 사이의 간극을 날카롭게 인식합니다. 그들에게 정부의 반(反)유럽적 행보는 자신들의 미래를 빼앗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기성세대: 안정과 전통의 수호자
반면 기성세대, 소비에트 시절을 경험한 세대의 시각은 다릅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러시 아어에 익숙하고, 소련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젊은 세대만큼 단순하지 않습니다. 적대감과 동시에 문화적 친밀감, 경제적 의존성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뒤섞여 있습니다.
2024년 알자지라의 취재에서 조지아의 한 중년 박물관 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변화를 원합니다. 조지아는 EU에 가입해야 해요. 우리의 전통은 유럽과 비슷하니까요. 그러나 조지아는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보다 더 잘 균형을 유지해야 해요. 러시아와 EU 양쪽과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현실주의입니다. 러시아를 자극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조심 스러운 태도 뒤에 숨어 있습니다.
종교적 보수성도 세대 간 차이를 만듭니다. 기성세대의 많은 이들은 정교회의 권위를 존중하며, 교회가 제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에 동의합니다. 그들에게 서구의 자유주의는 "가족의 해체", "성적 타락", "도덕적 방종"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LGBT 권리를 "치명적인 죄"라고 규정할 때, 그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젊은이들이 프라이드 행진을 요구할 때, 그들은 "우리 문화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족 안에서의 갈등
세대 간의 가치관 차이는 거리의 시위뿐 아니라 저녁 식탁에서도 나타납니다. 조지아는 전통적으로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가 매우 강한 사회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친척들과의 잦은 교류, 손님 접대와 같은 공동체적 의무는 개인의 선택보다 우선시되어 왔습니다. 결혼, 직업 선택, 독립 여부는 개인의 결정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서구식 교육을 받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진 젊은 세대는 이러한 전통을 답답해 하거나 부담스러워합니다. "끝없는 가족 행사", "친척들의 간섭", "부모님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결혼 적령기가 지나도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 세대와의 마찰을 불가피하게 만듭니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하거나 일한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은 귀국 후 가족과의 갈등을 더 심하게 경험합니다. 그들은 서구에서 배운 자기결정권, 다양성 존중, 개인의 자유를 본국의 현실에 적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부모 세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방식"을 고수 하려 합니다. 무조건적인 순응, 효도, 전통적 성 역할에 대한 기대가 충돌합니다.
'외국 대리인 법'과 세대의 전쟁
2024년 조지아 정부가 '외국 영향력 투명성법'을 재추진했을 때, 이 법안은 곧바로 세대 간갈등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법은 외국으로부터 자금의 20% 이상을 지원받는 비정부기
구(NGO)와 언론사에게 "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등록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비판자들은 이것이 러시아의 악명 높은 '외국 대리인 법'을 본뜬 것이며, 시민사회를 탄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합니다.
젊은 세대에게 이 법안은 "유럽의 꿈을 빼앗으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EU 깃발을 흔들고, "우리는 유럽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일부는 과격해지기도 했습니다. 경찰과 충돌이 벌어지고, 최루가스가 뿌려지고, 물대포가 발사되 었습니다. 수백 명이 연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구타와 부상을 당했습니다.
반면 정부와 보수 세력은 다른 프레임을 제시했습니다. 그들은 이 법이 "투명성을 위한 것" 이며,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조지아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시위대를 "서방의 돈을 받은 꼭두각시", "조지아의 전통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 묘사했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은 시위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마약에 찌든 세대", "도덕적으로 타락한 세대"로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2024년 10월 총선에서 '조지아의 꿈' 당은 54%의 득표율로 승리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야당과 대통령, 국제 선거 감시단은 대규모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투표함 조작, 유권자 매수, 협박 등의 혐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살로메 주라비슈빌리(Salome Zourabichvili) 대통령은 "여러분은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표를 훔치고, 여러분의 미래를 훔치려 한 것입니다"라고 시위대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2024년 11월, 정부가 EU 가입 협상을 2028년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시위는 더욱 격렬 해졌습니다. 이 시위는 202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지아의 시위는 세르비아의 반부패 시위와 함께 2024년부터 거의 매일 지속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시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과도기의 조지아
조지아는 지금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습니다. 한쪽에는 8,000년 된 와인 항아리와 성호를 긋는 경건한 신앙, 수프라의 끈끈한 유대와 정교회의 황금빛 돔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테크노 클럽 '바시아니(Bassiani)'에서 밤새 춤추는 젊은이들, EU 깃발을 흔들며 자유를 외치는 시위대, 그리고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있습니다.
이 두 세계는 서로 적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사람 안에 공존하기도 합니다. 낮에는 시위에 참여하고 밤에는 수프라에서 할아버지의 건배사를 듣는 젊은이. 유럽 통합을 지지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중년. 교회에 다니면서도 정부의 권위 주의에 반대하는 신자. 조지아의 현실은 흑백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문화정책 연구자들은 조지아 사회가 전통 문화를 보호하면서도 다문화주의, 소수자 권리, 시민교육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족 내에서도 "아이들의 선
택을 존중하되, 기본적인 전통은 지키자"는 식의 타협적 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갈등과 조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날 조지아인의 'DNA'는 정교회 신앙, 수프라 중심 공동체 의식, 가족주의라는 전통적 요소와, 유럽적 권리, 개인의 자율, 다양성이라는 현대적 가치가 긴장과 대화를 반복하며 새롭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은 조지아가 정체성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닙니 다. 오히려 그것은 과거의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치열한 성장통입니다.
조지아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한 젊은 시위 참가자는 알자지라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부는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야말로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Z세대는 지금 우리나라를, 우리의 주권을, 우리의 유럽-대서양적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시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프라 테이블에서 타마다가 외치는 전통적인 건배사와, 거리에서 EU 깃발을 흔들며 자유를 외치는 청년들의 구호가 공존하며 충돌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조지아의 모습입니다. 이 긴장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조지아인들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 왔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