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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14장 체제 전환의 명암
제4부 조지아의 경제와 사회
14장 체제 전환의 명암
가. 소련 붕괴 후 경제 붕괴와 부패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깃발이 크렘린 위에서 내려졌습니다. 그 순간 조지아는 70년 만에 독립을 되찾았지만, 자유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조지아가 마주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총체적 붕괴였습니다.
소비에트 시절 조지아는 '소련의 정원'이라 불렸습니다. 흑해 연안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감귤, 차(茶), 담배, 포도가 풍성하게 자랐고, 조지아산 와인과 코냑은 모스크바의 연회장을 채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지아를 '소비에트의 이탈리아'라고도 불렀습니다. 당시 조지아 인들의 생활 수준은 다른 소비에트 공화국들보다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 풍요에는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생산과 유통의 상당 부분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경제'에서 이루어졌고, 이 암흑의 영역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런데 소련이 사라지자, 조지아 경제를 지탱하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중앙 계획 경제 체제가 해체되면서 공급망이 끊겼습니다. 러시아에서 오던 원자재와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았고, 러시아 시장에 팔던 농산물과 공산품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국영 기업들은 주문도, 자금줄도 동시에 잃었습니다.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숫자는 재앙의 규모를 말해줍니다. 1990년과 1994년 사이, 조지아의 국내총생산(GDP)은약 70~80퍼센트나 급감했습니다. 세계은행의 기록에 따르면, 1990년 약 60억 달러에 달하던 GDP가 1994년에는 15억 달러 미만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었습니다. 국가 경제의 붕괴였습니다.
화폐 가치는 종잇조각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독립 직후 도입한 '쿠폰'이라는 임시 통화는 끝없이 찍혀 나왔고,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플레이션이었습니다. 1993년 연간 물가 상승률은 7,600퍼센트에 달했습니다. 빵 한 덩이를 사려면 가방 가득 지폐를 담아 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에 월급을 받으면 점심때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녁이 되면 그 돈의 가치가 반으로 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고통은 정치적 혼란과 맞물렸습니다. 압하지야(Abkhazia)와 남오세티야(South Ossetia)에서 분리주의 전쟁이 터졌습니다. 내전은 수십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냈고, 국가 재정을 파탄 냈습니다.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급속히 약화되었고, 트빌리시조차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1991년부터 1992년 사이 쿠데타와 정변이 이어졌고, 첫 대통령 즈비아드 감사 후르디아(Zviad Gamsakhurdia)는 축출당해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고통의 장면은 전력 위기였습니다. 전기는 현대 사회의 혈관과 같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조지아에서는 그 혈관이 막혔습니다. 전력망이 파괴되거나 작동을 멈췄 고, 시민들은 하루에 겨우 몇 시간만 전기를 공급받았습니다. 세계은행 자료는 당시 소비 자가 '하루 몇 시간만 전기를 공급받는' 수준으로 서비스 품질이 급락했다고 기록합니다. 2001년 겨울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 트빌리시의 아파트들이 하루 4시간 정도만 전기를 공급받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무엇이 일어날까요? 냉장고가 작동하지 않아 음식이 상합니다.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에 얼어야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합니다. 상점이 문을 닫고,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병원에서 수술이 중단됩니다. 치안도 무너집니다. 어두운 거리는 범죄의 온상이 됩니다. 사람들은 추위를 피하려고 도심의 가로 수를 베어 땔감으로 썼습니다. 트빌리시의 아름다운 거리는 황폐해졌습니다.
이 붕괴의 틈새를 파고든 것은 범죄 조직이었습니다. '보르 브 자코네(Vor v Zakone)', 한국 어로 번역하면 '법(法)의 도둑' 또는 '법 도둑'이라 불리는 전문 범죄 집단이 조지아 사회를 장악했습니다. 이 용어는 역설적입니다. 그들은 도둑이지만, 자신들만의 '법'과 규약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었습니다. 소비에트 시절 굴라그(강제 수용소)에서 태어난 이 범죄 문화는 소련 붕괴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조지아는 이 범죄 네트워크의 요람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약 700~900명으로 추산되던 '법 도둑' 우두머리들 중 거의 절반에서 3분의 2가 코카서스(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 잔)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인, 관료, 기업인과 결탁하여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습니다. 공식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자, 이들이 사실상의 '그림자 정부'가 되었습니다. 분쟁을 중재하고, 보호세를 걷고, 일자리를 주선하 고, 심지어 '정의'를 집행했습니다.
'므헤드리오니(Mkhedrioni)'라는 준군사조직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사(騎士)'라는 뜻의 이 무장 단체는 1990년대 조지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거리에서 총을 들고 다녔고, 사업체에서 보호세를 뜯어냈고, 정치적 암살과 협박에도 연루되었습니다. 국가의 폭력 독점이 무너진 상황에서, 무력을 가진 자가 곧 권력이었습니다.
부패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니, 부패 없이는 일상이 불가능했습니다. 세금이 걷히지 않으니 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급여를 받지 못한 공무원들은 생존을 위해 뇌물에 의존했습니다. 교통 경찰은 도로 곳곳에서 운전자를 세워 대놓고 돈을 뜯어냈습니다. 대학 입학에는 뇌물이 필수였고,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으려면 의사 주머니에 돈을 넣어야 했습니다. 사업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를 받으려면 관리에게 뇌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세관, 경찰, 세무서, 법원 등 국가 기관과 마주치는 모든 접점이 '통행료'를 요구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부패인식지수에서 조지아는 최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2003년 조사에서 조지아는 133개국 중 124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 타락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부패는 '국가의 거래 비용을 폭증시 키는 변수'였습니다. 기업은 생산성 향상 대신 관리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자원을 쏟아야했습니다. 투자자는 규칙을 믿지 못하니 투자를 꺼렸습니다. 시민들은 법을 따르기보다 우회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회 전체가 '정상적인 경제 활동'보다 '리스크 회피'에 최적화되 었습니다.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가 이끄는 정권은 이 혼란 속에서 나라를 안정시키려 했지만, 부패를 뿌리 뽑지는 못했습니다. 셰바르드나제는 소련 시절 외무장관을 지낸 노련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내전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국제 사회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권 자체가 부패 구조와 공존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는 무시되기 일쑤였고, 서방 투자자들은 실망하여 떠났습니다. 조지아는 '희 망이 없는 나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살아낸 조지아인들에게 1990년대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암시장과 지하 경제에 의존하여 생존했습니다. 이웃끼리 물물 교환을 하고, 해외로 나간 친척들의 송금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가족 중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러시아나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조지아의 인구는 1989년 약 540만 명에서 2001년 44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경제 붕괴, 내전, 그리고 희망의 부재가 사람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바닥 경험이 이후 개혁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박함이 급진적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2003년, 조지아인들은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나. 사카슈빌리의 급진 개혁과 비즈니스 환경
2003년 11월 2일, 조지아에서 의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출구조사 결과와 공식 발표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었습니다. 셰바르드나제 정권의 노골적인 부정 선거였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이 트빌리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꽃가게에서 장미를 사 손에 들고 평화롭게 행진했습니다. 11월 22일, 시위대는 의사당을 점거했습니다. 젊은 야당 지도자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가 장미꽃을 들고 단상에 올랐습니다. 셰바르드나제는 사임했습니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역사는 이것을 '장미 혁명(Rose Revolution)'이라 부릅니다.
사카슈빌리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젊은 변호사였습니다.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대통령이 된 그는 조지아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개혁은 '충격 요법(shock therapy)'에 가까웠습니다. 점진적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장은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사카슈빌리는 집권하자마자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어떤 범죄 권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법 도둑'이라는 지위 자체를 불법화했습니다. 범죄 조직 우두머리들이 줄줄이 체포 되었습니다. 당대 가장 유명한 조직범죄 보스 중 하나였던 자카르 칼라쇼프(Zakhar Kalashov)의 호화 저택과 재산이 몰수되어 국가에 귀속되었습니다. 그의 3천만 달러짜리 빌라는 경찰서나 공공 기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조치는 상징적 의미가 컸습니다. 범죄로 부를 축적해도 그것이 결국 빼앗긴다는 메시지를 전 사회에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개혁은 경찰 조직에서 일어났습니다. 사카슈빌리는 부패의 온상이었던 교통경찰 전체를 하루아침에 해고했습니다. 약 3만 명의 경찰관이 일시에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경찰 조직을 구성하기 전까지약 3개월간 경찰 없는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치안 공백이 우려되었지만, 범죄가 오히려 줄었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기존 경찰이 그만큼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방증이었습니다.
새로 선발된 경찰관들의 급여는 이전보다 10배 이상 인상되었습니다. 그 대신 뇌물 수수는 일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투명성을 상징하기 위해 새 경찰서 건물은 유리로 지어졌습니다. 누구나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이 '유리 경찰서'는 사카슈빌리 개혁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경찰에 대한 시민 신뢰도가 급상승했습니다. 뇌물 요구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국가 기관을 다시 믿기 시작했습니다.
행정 분야에서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사카슈빌리 정부는 2011년 '하우스 오브 저스티스(House of Justice)'라는 원스톱 서비스 센터를 도입했습니다. 여권 발급, 부동산 등기, 법인 설립, 출생 및 혼인 신고 등 거의 모든 행정 절차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
다. 과거에는 뇌물을 주고 며칠씩 기다려야 했던 업무가 이제는 단 몇 분, 길어야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건물 자체도 투명한 유리로 지어져 어떤 비리도 숨길 수 없게 설계되었습니다. 시민들은 대기표를 뽑고 깔끔한 공간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민원을 해결했습니다. 중간에 손을 벌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규제 혁파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업을 시작하려면 갖가지 인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사카슈빌리 정부는 이런 요건의 대부분을 없애버렸습니다. 미국 국무부 문서에 따르 면, 2005년 조지아 정부는 인허가 요건의 약 84퍼센트를 제거했습니다. 라이선스와 허가 품목 수가 1,000개에서 100개 미만으로 줄었다는 추산도 있습니다. 기업 등록에 걸리는 시간도 며칠에서 하루, 심지어 몇 시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세제 개혁도 파격적이었습니다. 복잡하던 세금 구조가 단순해졌습니다. 2004~2005년 개혁 에서 세율 종류가 21개에서 7개로 줄었고, 소득세는 누진세 구조에서 20퍼센트 단일세율( at tax)로 바뀌었습니다. 세금 신고도 전자 시스템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세율을 낮추고 제도를 단순하게 만들자,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 것입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GDP 대비 조세 수입은 2003년 12퍼센트 수준에서 2010년 25퍼센 트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세금이 '내고 싶지 않은 부담'에서 '낼 수 있는 비용'으로 바뀌자, 지하 경제가 양지로 올라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국제 평가에서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 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순위에서 조지아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2005년 112위였던 조지아는 2012년 세계 8위, 2020년에는 세계 7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구소련 국가 중에서는 단연 1위였습니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사업 시작 용이성에서 세계 2위, 재산 등록에서 5 위, 소액 투자자 보호에서 7위, 계약 이행 강제에서 12위를 기록했습니다. '부패 국가'라는 낙인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타이틀로 바뀐 것입니다.
도시 풍경도 바뀌었습니다. 사카슈빌리 정부는 낡은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현대 적인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흑해 연안의 바투미는 화려한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서며 '코카 서스의 라스베이거스'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트빌리시에는 미래주의적 디자인의 유리 다리와 콘서트홀이 세워졌습니다. 투명한 유리 건축물은 사카슈빌리가 추구하는 '투명성' 과 '현대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습니다. 사카슈빌리의 개혁은 급진적이었던 만큼 비판도 받았습니다. 권력이 한 사람과 그 측근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야당과 언론에 대한 탄압 의혹이 제기되었고, 사법 독립성에 대한 우려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은행의 평가 문서 조차 반부패 성과와 별개로 사법 독립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07년 에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사카슈빌리는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fl 2012년 의회 선거에서 사카슈빌리의 통합국민운동(United National Movement)은 억만장자 사업가 비지나 이바니슈빌리(Bidzina Ivanishvili)가 이끄는 '조지아의 꿈(Georgian Dream)' 연합에 패배했습니다. 2013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 사카슈빌리는 정치적 기소를 피해 해외로 떠났습니다. 그의 개혁 유산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구축한 행정 시스템과 반부패 기조가 현대 조지아 경제의 뼈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우스 오브 저스티스'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고, 낮은 세율과 규제 완화 기조도 대체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의 2024년 'Business Ready' 보고서에서도 조지아는 규제 효율성 3위, 운영 효율성 2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 낮은 세율과 디지털 노마드 특구
조지아가 오늘날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 때문만이 아닙니다. 제도 설계가 명료하기 때문입니다. 조지아는 자국을 '코카서스의 싱가포르'로 포지셔닝하며, 낮은 세율과 개방적인 정책으로 외국인 투자자, 기업가, 그리고 '디지털 노마 드'라 불리는 원격 근무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
조지아의 조세 제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고 낮은 수준에 속합니다. 현재 조지아에는 소득세(20퍼센트), 부가가치세(18퍼센트), 법인세(15퍼센트), 관세(0퍼센트, 5퍼센트, 12 퍼센트 세 구간), 소비세, 재산세 등 단 6종류의 세금만 존재합니다. 복잡한 세금 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단순함입니다.
개인 소득세는 20퍼센트의 단일세율( at tax)입니다. 누진세 구간이 없어서 소득이 얼마든 같은 비율을 냅니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낮은 편이지만, 더 파격적인 혜택이 있습니다. ' 소규모 사업자 지위(Small Business Status)'를 얻으면 세율이 극적으로 낮아집니다. 연 매출 50만 라리(약 1억 8천만 원) 이하인 개인 사업자는 매출의 단 1퍼센트만 세금으로 내면 됩니다. 복잡한 공제 규정 대신, 간단한 매출 기반 저율 과세입니다. 연 매출 3만 라리(약 1,100 만 원) 미만의 소상공인은 아예 세금이 면제됩니다.
fl 법인에도 파격적인 혜택이 있습니다. 2017년부터 조지아는 '에스토니아식 법인세 모델'을 도입했습니다. 기업이 이익을 배당하지 않고 재투자할 경우,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익이 회사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세금이 없고, 배당으로 빠져나갈 때만 과세됩니다. 이것은 기업의 성장과 재투자를 장려하는 제도입니다. 스타트업이나 성장기 기업에 매우 유리합니다.
IT 산업에는 더욱 파격적인 특례가 있습니다. '가상 존(Virtual Zone)' 또는 '가상 존 인격(Virtual Zone Person, VZP)'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IT 기업은 해외 고객에게 제공하는 디지털 서비스나 소프트웨어 수출 소득에 대해 법인세를 내지 않습니다. 0퍼센트입니다. 조지아 안에서 코드를 짜서 해외로 팔면 법인세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제도는 조지아가 "인력과 코드를 수입해 외화 수익으로 바꾸려는" 정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공장을 유치하는 대신 노트북을 유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 기업(International Company)' 지위도 있습니다. 이 자격을 얻으면 법인세와 소득세를 5퍼센트의 낮은 세율로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조지아 정부는 다양한 세제 혜택 메뉴를 마련해놓고 기업과 개인 사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구'라는 표현은 물리적인 공단이나 울타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조지아의 특구는 법적 지위와 자격에 기반한 '가상 특구'입니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짓는 대신, 특정 업종(해외 고객 대상 IT 서비스)과 특정 납세자(자격을 갖춘 개인 사업자나 법인)에게 다른 규칙을 적용합니다. 이 방식은 행정 비용이 낮고, 실패해도 철회가 비교적 쉽습니다. 국가 입장에서 리스크가 작은 실험입니다.
체류 정책도 관대합니다. 조지아는 한국을 포함한 90개국 이상 국민에게 1년간 무비자 체류를 허용합니다. 비자 없이 입국해서 364일 동안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 로도 충분히 파격적인데, 원격 근무까지 허용됩니다. 비자 스트레스가 없으니 "일단 살아 보자"가 가능해집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조지아는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를 유치하기 위해 더욱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Remotely from Georgia'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원격 근무자들을 적극 유치했습니다. 세계 각국이 국경을 닫았을 때 조지아는 오히려 문을 열었습니다. 물론 건강 검진 등 방역 조치는 있었지만,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조지아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저렴한 물가도 큰 매력입니다. 트빌리시 중심가의 괜찮은 아파트 월세는 300~600달러 수 준입니다. 서울이나 뉴욕, 런던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외식 비용도 부담이 적습니다. 현지 식당에서 와인 한 병과 함께 푸짐하게 저녁을 먹어도 20~30달러면 충분합니다. 인터넷 속도는 빠르고, 코워킹 스페이스와 카페 등 일하기 좋은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결합되면서 트빌리시는 세계적인 디지털 노마드 허브로 떠올랐습니다. 프리랜서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콘텐츠 크리에이터, 온라인 사업가들이 노트북 하나 들고 조지아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조지아에서 살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클라이언트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조지아의 낮은 세율과 저렴한 물가 덕분에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 하거나 재투자할 수 있습니다. '가성비 최고의 유럽 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지아는 기회의 땅입니다.
가상 자산(암호화폐)에 대한 정책도 우호적입니다. 조지아는 저렴한 수력 발전 전기를 바탕으로 대규모 데이터 센터와 암호화폐 채굴 시설을 유치했습니다. 개인의 암호화폐 거래 이익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이런 개방적인 금융 환경은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노마드와 외국인 유입은 임대료와 물가를 끌어올립니 다. 외국인 수요가 도시 임대료를 밀어올리면, 현지 중산층과 청년층이 가장 먼저 밀려납니다. 평균 월급이 1,000~1,500라리(약 50~70만 원) 수준인 일반 조지아인들에게 월세 700 달러(약 90만 원) 이상의 아파트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입니다. 대학생들이 방을 구하지 못해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나라가 성장했다"는 통계와 "내 월세가 감당 불가가 됐다"는 체감 사이의 간극은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노마드 친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주택 공급과 도시 인프라 확충, 내국인 소득 증가, 세수의 재분배와 서비스 개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에게 좋은 나라'가 '자국민에게 비싼 나라'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조지아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라. 러시아 자본 유입의 두 얼굴
조지아 경제에서 러시아는 가장 큰 위협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모순적 존재입니다. 2008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영토의 20퍼센트를 점령당한 나라가 그 침략국의 자본과 인력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상황, 이것이 조지아의 아이러니입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현상이 조지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수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조지아로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이들은 크게 세 부류였습니다. 첫째, 징집을 피하려는 젊은이들. 둘째, 서방의 제재로 사업 기반이 흔들린 기업인과 전문직 종사자들. 셋째, 푸틴 정권에 반대하지만 감옥에 가기는 싫은 반체제 성향의 시민들.
추산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10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이 조지아로 이주했습니다. 어떤 자료는 12만 명 이상이라고도 합니다. 트빌리시의 인구가 일시적으로 200만 명까지 급증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고학력, 고숙련 인력이었습니다. IT 개발 자, 디자이너, 마케터, 기업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금을 들고 왔습니다. 막대한 현금을.
단기적 효과는 눈부셨습니다. 2022년 조지아의 GDP 성장률은 11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전쟁의 '반사 이익'이었습니다. 2023년과 2024년에도 7~9퍼센트대의 높은 성장세가 유지되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소비가 서비스업을 살렸습니다. 주거, 음식, 교통, 통신, 교육, 코워 킹, 전문 서비스(법률, 회계, 번역)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바투미와 트빌리시의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맞았습니다. 환전소와 상점들은 밤늦게까지 문을 열었습니다. 트빌리시 거리는 러시아어로 가득 찼습니다.
외화 유입도 대규모였습니다. 러시아인들이 가져온 송금과 자본 이동은 조지아 통화 라리(GEL)의 가치를 지탱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조지아가 러시아발 이주와 자본 유입의 '스필오버(spillover, 파급 효과)'로 2022~2023년에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지아 국립은행의 금융 안정 보고서도 2022년 이주 증가가 부동산 수요를 크게 자극했음을 인정합니다.
러시아를 우회하는 물류와 무역 수요도 조지아로 몰렸습니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와의 직접 거래가 어려워진 기업들이 조지아를 경유지로 활용했습니다. 운송 및 물류 섹터가큰 혜택을 보았습니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을 십분 활용했습니다.
기업 설립과 인적 자본 유입도 이루어졌습니다. 2022~2023년 러시아 관련 신규 법인 등록이 크게 늘었고, 은행 예금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단순한 소비를 넘어, 고용과 세금과 기술이 조지아에 남게 된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디지털 노마드 정책'과 결합하면, 조지아는 사람(기술)과 돈(외화)을 동시에 빨아들이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좋은 충격'에는 '나쁜 부작용'이 따라붙었습니다. 첫째는 주거비 폭등입니다. 외국인 수요가 도시 임대료를 끌어올렸습니다. 수도 트빌리시의 아파트 임대료가 2배 이상 폭등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현지 조지아인들, 그중에서도 중산층과 청년층이 가장 먼저 밀려났습니다. 평균 월급이 50~70만 원 수준인 일반 조지아인에게 월세 90만 원 이상의 아파트는 감당 불가입니다. 이것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 cation)입니다. 외지인이 들어오 면서 원주민이 쫓겨나는 현상.
IMF는 러시아 전쟁 이후 이주민 유입으로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급등했다가 2023년 중반 이후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는 흐름을 언급하면서도, 주택 시장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조지아 국립은행도 같은 맥락의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둘째는 사회적 갈등입니다. 조지아는 2008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잃었습니다. 영토의 20퍼센트가 점령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침략국의 국민들이 자국의 수도를 활보하고,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은 조지아인들에게 깊은 박탈감과 분노를 안겨줍니다.
트빌리시 거리 곳곳에는 "러시아는 점령국이다(Russia is an occupier)", "우크라이나에 영광 을(Glory to Ukraine)"이라는 그래피티가 가득합니다. 조지아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일부 식당이나 바에서는 러시아인 손님에게 "
fi 푸틴을 비난한다"는 서명을 요구하거나 입장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적 이익과 민족 감정 사이의 충돌입니다.
셋째는 지정학적 리스크입니다. 러시아 자본과 인력이 대규모로 유입되면, 조지아의 대외 정책과 국내 정치가 영향받을 수 있습니다. 자본 유입은 때로 '소프트 파워'와 로비로 작동합니다. 조지아가 EU와 NATO 가입을 오랜 숙원으로 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심화는 전략적 위험입니다.
국제 사회는 조지아가 러시아의 제재 회피처로 이용될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실제로 전쟁 이후 조지아를 경유하는 '그림자 무역(shadow trade)'과 제재 회피 의심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서방, 그중에서도 미국과 EU는 이런 움직임을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지아가 제재 회피의 창구가 된다면,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입니다. 이것은 조지아의 EU 가입 열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넷째는 거시 경제의 변동성입니다. IMF가 반복해서 지적하듯이, 러시아발 유입은 "갑자기 생겼다가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성격을 가집니다. 지정학적 상황이 바뀌거나, 제재가 강 화되거나, 이주민들이 더 서쪽(유럽)으로 이동하면, 유입이 유출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장률이 둔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조정되고, 은행 유동성이 변동하고, 환율에 압력이 가해집니다. 단기 호황이 장기 안정으로 자동 전환되지 않습니다.
다섯째는 경제 구조의 왜곡입니다. 유입된 돈이 제조업이나 기술 혁신으로 스며들지 않고, 부동산과 소비, 단기 서비스업에만 머물면 무엇이 남을까요? "도시가 비싸진 것" 외에는 별로 없을 수 있습니다. 조지아가 IT 특례(가상 존)와 디지털 노마드 정책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 유입을 생산성 증가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현실적으로 조지아는 러시아와의 경제적 단절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조지아 와인의 최대 수출국입니다. 2006년 러시아가 조지아산 와인 수입을 금지했을 때 조지아 경제가 휘청거렸던 기억은 아직 생생합니다. 러시아 관광객과 화물 트럭들이 가져다 주는 수입도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조지아는 러시아라는 거대한 이웃의 자본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로 인해 정체성이 흔들리고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 실리와 안보의 딜레 마, 성장의 과실과 불평등의 씨앗, 외화의 축복과 의존의 덫. 이것이 조지아가 직면한 가장 아이러니하고도 위태로운 현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조지아는 붕괴된 사회에서 시작해 급진적 개혁을 거쳐 가장 개방적인 시장 경제 모델 중 하나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리스크와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는 조지아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작은 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하는 법, 그것이 조지아의 역사가 우리 에게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