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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5장 GPU라는 무기
5장 GPU라는 무기
로마의 군단병이 전장에서 검을 빼들 때, 그것은 단순한 금속 조각이 아니었습니다. 짧지만 날카로운 글라디우스는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제패할 수 있게 해준 무기였습니다. 좋은 무기는 전투의 방식을 바꾸고, 바뀐 전투 방식은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습니다.
1999년의 실리콘밸리는 마치 기원전 3세기의 지중해 연안과 닮아 있었습니다.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저마다 패권을 주장하며 다투던 시대처럼, 그래픽 칩 회사들이 난립하여 서로의 목을 조르고 있었습니다. 3dfx, ATI, 매트록스, S3, 그리고 엔비디아. 이름만 들어도 복잡한 이 회사들 사이 에서 젠슨 황은 조용히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의 칼에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GPU. 이 세 글자는 1999년 이전에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습니다.
1999년, 세상에 없던 단어를 발명하다
카이사르가 위대했던 것은 많은 땅을 정복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가 정복한 땅에 로마의 법과 언어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개념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개념의 주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젠슨 황은이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1999년 8월 31일, 엔비디아는 새로운 칩을 발표하면서 낯선 용어를 내세웠습니다. 지포스 256이라고 이름 붙은 이 칩은 세계 최초의 GPU라고 소개되었습니다. GPU. Graphics Processing Unit의 줄임말입니다. 그래픽 처리 장치라는 뜻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해 보이는 이 단어가 왜 혁명적이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1999년 당시 컴퓨터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 시절 컴퓨터에는 오직 한 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CPU, 즉 중앙처리장치였습니다. 인텔이 만드는 이 칩이 컴퓨터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장했습니다. 글을 쓰든, 계산을 하든, 음악을 듣든, 게임을 하든 모든 것이 CPU를 거쳐야 했습니다.
CPU는 컴퓨터의 두뇌이자 심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래픽 카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CPU가 처리한 결과를 모니터에 뿌려주는 하인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래픽 가속기라고 불렀습니다. 가속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CPU의 일을 조금 빠르게 도와주는 보조 장치라는 의미였습니다. 칩의 이름부터 그 한계가 명확했던 것입니다.
젠슨 황은 이 구조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3차원 그래픽을 화면에 그려내는 일은 정말 CPU의 보조만 받으면 되는 단순한 작업일까요.
그의 대답은 단호한 부정이었습니다.
화면에 3차원 물체를 그리려면 복잡한 수학 계산이 필요합니다.
물체의 위치를 계산하고, 빛이 어느 방향에서 비추는지 계산하고, 그림자가 어디에 생기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이런 계산이 초당 수백만 번 이루어져야 화면이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CPU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게임 속 적의 움직임까지 계산해야 했으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젠슨 황은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CPU와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계산이 아닌가. CPU가 한 명의 천재 수학자라면, 그래픽 계산에는 수천 명의 일반 계산원이 동시에 일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래픽 칩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가속기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CPU와 대등한 위치에서 컴퓨터의 또 다른 두뇌 역할을 하는 독립된 처리 장치라고 정의했습니다.
엔비디아는 GPU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좌표 변환, 조명 처리, 삼각형 설정과 클리핑, 렌더링 엔진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고, 초당 최소 1천만 개의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는 단일 칩 프로세서." 이 정의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Processing Unit, 즉 처리 장치라는 표현입니다.
그때까지 Processing Unit이라는 말은 오직 CPU만 쓸 수 있는 성스러운 칭호와 같았습니다. 젠슨 황은 감히 그 칭호를 자신의 칩에 붙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CPU의 왕국에 도전장을 내민 독립 선언문이었습니다.
업계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래픽 카드 주제에 감히 프로세서를 자처하다니. 하지만 언어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GPU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래픽 칩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조 장치가 아니라 독립된 두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름을 지배하는 자가 개념을 지배하고, 개념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합니다. 젠슨 황은 이 진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지포스 256: 병렬 연산의 서막
새로운 이름을 내세웠으니, 그에 걸맞은 실력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1999년 10월 11일, 엔비디아는 지포스 256을 정식으로 출시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GPU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온 이 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지포스 256이 기존의 그래픽 칩들과 무엇이 달랐는지 설명하려면, 먼저 3차원 그래픽이 어떻게 만들어지 는지 간단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3차원 캐릭터나 건물은 수많은 작은 삼각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삼각형을 폴리곤이라고 부릅니다. 캐릭터가 움직일 때마다 이 수천 개의 삼각형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계산해야 합니다. 이것을 좌표 변환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Transform입니다.
그 다음에는 빛의 효과를 계산해야 합니다.
태양이 어디서 비추는지, 그림자는 어디에 생기는지, 물체의 어느 부분이 밝고 어느 부분이 어두운지 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조명 처리라고 합니다. 영어로 Lighting입니다. 두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T&L이라고 부릅니다.
1999년 이전까지 이 T&L 계산은 전적으로 CPU의 몫이었습니다. 그래픽 카드는 CPU가 계산을 끝낸 뒤에야 색칠하는 일만 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건축사가 설계도를 그리고, 좌표를 계산하고, 빛의 방향까지 모두 정한 뒤에야 페인트공이 색칠을 시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지포스 256은 이 구조를 뒤집었습니다. T&L 엔진을 칩 안에 내장한 것입니다. 이제 CPU는 대략적인 명령만 내리면 됩니다. "저기에 기둥을 세워라."
그러면 GPU가 알아서 기둥의 좌표를 계산하고, 빛의 방향을 분석하고, 그림자를 그립니다. CPU는 이 고된 작업에서 해방되었습니다.
CPU가 할 일이 줄어들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CPU는 이제 게임 속 적의 인공지능이나 물리 법칙을 계산하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게임 캐릭터들이 더 똑똑해지고, 폭발이나 낙하 같은 물리 효과가 더 사실적으로 변했습니다. 전체적인 게임 경험이 한 단계 올라간 것입니다.
지포스 256의 성능은 숫자로도 증명되었습니다.
이 칩은 초당 1천만 개 이상의 폴리곤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경쟁 제품들, 예를 들어 3dfx의 부두3나 엔비디아의 이전 제품인 리바 TNT2에 비해 50퍼센트 이상 빠른 속도였습니다.
게이머들은 환호했습니다. 화면 속의 괴물이 더 이상 네모난 상자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근육과 번들거리는 피부를 가진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젠슨 황이 본 것은 게임 화면보다 더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T&L 엔진의 본질, 즉 병렬 연산이라는 개념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병렬 연산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교실에서 20개의 문제가 들어간 시험 답안지 수천 장을 채점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CPU 방식은 천재 선생님 한 명이 답안지를 한 장씩 전부다 보면서 20문제 전부를 순서대로 채점하는 것 입니다. 늦지는 않지만 어쨌든 한 장 한 장 순서대로 해야 합니다.
GPU 방식은 선생님들이 만약 20개의 문제라면 각각의 선생님들이 각 문제별로만 분산해서 자기가 맏는 문제에 대해서만 채점하는 것입니다. 전체 속도는 이 방식이 훨씬 빠릅니다.
3차원 그래픽은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화면의 수백만 픽셀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니, 천재 한 명보다 일꾼 수천 명이 유리합니다. 지포스 256은이 병렬 처리의 철학을 하드웨어로 구현한 첫 번째 제품이었습니다.
젠슨 황은 이 시점에서 조용히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병렬 처리 능력을 게임이 아닌 다른 일에 쓴다면 어떨까. 과학 계산이나 데이터 분석에 쓴다면 어떨까. 이 생각은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지 않았지만,
훗날 CUDA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CUDA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1999년의 지포스 256은 게이머들에게는 화려한 장난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컴퓨터 역사에서 이 칩은 훨씬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직렬 연산이 지배하던 세상에 병렬 연산이 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말이 끄는 수레가 지배하던 세상에 증기 기관이 등장한 것처럼, 컴퓨팅의 방식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3dfx의 몰락과 새로운 왕의 등극
역사에는 영원한 강자가 없습니다. 로마 제국도 천 년을 버티지 못했고, 징기스칸의 제국도 손자 대에서 분열되었습니다. 기술의 역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1990년대 중반, 3차원 그래픽 시장의 절대 군주는 3dfx라는 회사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부두라는 그래픽 카드는 게이머들에게 전설이자 신앙이었습니다. 부두 카드를 갖는 것은 그 시절 청소년들의 꿈이었습니다. 3dfx는 한때 85퍼센트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자랑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첫 번째 칩 NV1이 처참하게 실패했을 때, 시장을 호령하던 것이 바로 이 3dfx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 엔비디아는 수많은 추격자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거인 앞의 난쟁이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1등의 자리는 독이 든 성배와 같습니다. 승리에 도취된 자는 오만해지기 마련이고, 오만해진 자는 변화를 읽지 못합니다.
3dfx의 첫 번째 실수는 기술 표준에 대한 오판이었습니다.
그들은 글라이드라는 독자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집했습니다.
글라이드는 3dfx 카드에서만 작동하는 폐쇄적인 기술이었습니다. 게임 개발자가 글라이드로 게임을 만들면, 그 게임은 3dfx 카드에서만 제대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장점처럼 보였습니다. 3dfx 카드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이렉트X라는 개방형 표준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이렉트X로 만든 게임은 어떤 그래픽 카드에서든 작동했습니다. 개발자들은 점점 다이렉트X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더 많은 사용자에게 게임을 팔 수 있었으니까요.
엔비디아는 이 흐름을 재빠르게 읽었습니다.
젠슨 황은 독자 기술을 고집하는 대신 다이렉트X와 OpenGL 같은 개방형 표준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가 "생태계"라고 부르는 전략이었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하려 하지 말고,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함께 커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3dfx의 두 번째 실수는 사업 구조의 전환이었습니다.
원래 3dfx는 칩만 설계하고, 실제 그래픽 카드는 여러 제조사가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런데 1998년, 3dfx는 STB라는 그래픽 카드 제조사를 인수합니다. 칩 설계부터 카드 제조, 판매까지 모두 직접 하겠다는 야심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익을 독점할 수 있는 좋은 전략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3dfx가 직접 카드를 팔기 시작하자, 그동안 3dfx 칩으로 카드를 만들어 팔던 다른 제조사들이 적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들은 엔비디아 쪽으로 줄을 섰습니다. 3dfx는 혼자서 싸우게 되었고, 엔비디아는 연합군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젠슨 황은 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칩 설계에만 집중했습니다. 실제로 칩을 찍어내는 일은 대만의 TSMC라는 회사에 맡겼습니다. 완성된 칩으로 카드를 만드는 일은 ASUS, MSI, 기가바이트 같은 수많은 파트너사들에게 맡겼습니다. 엔비디아가 좋은 칩을 만들면, 수십 개의 회사들이 저마다의 브랜드로 그 칩을 탑재한 카드를 전 세계에 팔아주었습니다.
로마가 정복한 땅의 귀족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고 동맹으로 포용했던 것처럼, 젠슨 황은 파트너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 생태계 전략은 엔비디아 제국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3dfx의 세 번째 실수는 기술 트렌드의 오판이었습니다.
그들은 32비트 색상을 경시했습니다. 32비트 색상은 16비트 색상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색감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3dfx는 32비트 색상을 쓰면 프레임 속도가 떨어진다며 16비트를 고집했습니다. "어차피 게이머들은 색감보다 속도를 원한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습니다.
엔비디아는 달랐습니다.
젠슨 황은 32비트 색상과 하드웨어 T&L을 결합하면 속도와 화질을 모두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포스 256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지포스 화면을 보는 순간, 3dfx의 부두는 낡은 물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속도, 즉 제품 출시의 속도였습니다.
젠슨 황은 "6개월마다 새로운 칩을 내놓겠다"는 무시무시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가 예언한 무어의 법칙은 18개월에서 24개월마다 칩 성능이 두 배가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젠슨 황은 그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추구했습니다.
엔비디아 직원들에게는 죽음의 행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가혹한 속도 덕분에 엔비디아는 리바 128, 리바 TNT, 리바 TNT2, 지포스 256을 잇달아 쏟아냈습니다. 경쟁사들이 숨을 고르는 동안 엔비디아는 이미 다음 제품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3dfx가 다음 세대 칩을 개발하느라 허우적거리는 사이, 지포스 256이 출시되었습니다. 하드웨어 T&L을 탑재한 이 칩 앞에서 3dfx의 최신 제품들은 구세대로 전락했습니다. 게이머들은 냉정했습니다. 어제의 영웅에게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왕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2000년 11월 16일, 3dfx는 카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시 칩만 팔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한 달 뒤인 12월 15일, 3dfx의 채권자들이 파산 절차를 시작했고, 3dfx는 자산을 엔비디아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7천만 달러의 현금과 1백만 달러 상당의 엔비디아 주식이었습니다. 한때 시장 점유율 85퍼센트를 자랑하던 제국의 값치고는 초라했습니다. 젠슨 황은 쓰러진 적장의 검을 거두어 자신의 허리춤에 찼습니다. 3dfx의 엔지니어들과 지적 재산권은 엔비디아로 흡수되었습니다.
이로써 길고 길었던 그래픽 전쟁의 1막은 엔비디아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ATI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엔비디아는 이제 명실상부한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3dfx의 몰락은 기술 역사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기술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표준을 읽는 눈, 생태계를 만드는 전략,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 이 세 가지가 함께 갖추어져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3dfx는 기술력에서 뒤지지 않았지만, 나머지 세 가지에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젠슨 황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3dfx의 몰락을 보며 "파산 30일 전"의 공포를 다시 한번 되새겼을 것입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주하는 순간 무너집니다. 이것이 그가 3dfx에게서 배운 교훈이었습니다.
지포스 256의 성공은 엔비디아에게 엄청난 현금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보통의 경영자라면 주주들에게 배당하거나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데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젠슨 황은 달랐습니다.
그 돈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에 투자하기로 결심합니다.
지포스 256을 통해 경험한 병렬 연산의 힘. 이 힘을 게임에만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천 개의 작은 계산기가 동시에 일하는 이 구조를 과학 연구나 데이터 분석에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슈퍼컴퓨터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아이디어는 훗날 CUDA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10년 넘게 아무런 수익도 내지 못하는 고독한 투자가 될 것입니다.
월가는 비웃었고, 애널리스트들은 낭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젠슨 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그 고독한 10년의 투자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던 그도박이 어떻게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세상을 바꾸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1999년 젠슨 황이 발명한 세 글자, GPU. 그것은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컴퓨터의 역사를 바꾼 개념의 발명이었습니다. CPU가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하던 직렬의 시대에서, 수천 개의 작은 두뇌가 함께 일하는 병렬의 시대로 넘어가는 문을 연 것입니다. 그 문 너머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젠슨 황은 아직 그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
지만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우리는 범용 컴퓨터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이 회사를 시작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1993년 창업 때부터 1999년 GPU의 발명, 그리고 훗날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까지 일관된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글라디우스라는 짧은 검을 손에 쥔 로마 군단병들이 지중해를 제패했듯, GPU라는 무기를 손에 쥔 엔비디 아는 디지털 세계의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제국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고독한 여정의 끝에서야 완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