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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서재] 5.2 디지털 격차 해소 및 시민 참여형 Co-Creation
도시의 뇌와 디지털 트윈
5.2 디지털 격차 해소 및 시민 참여형 Co-Creation
김경진 변호사
중국에서는 건강 QR코드를 스마트폰에 띄우지 못해 버스를 타지 못하고, 병원 접수를 하지 못하고, 은행 창구에서 되돌아서야 했던 고령층을 가리켜 '코드 미소지 고령층(无码老人)'이라 부른다. 스마트시티 인프라가 도시 전역으로 퍼지고 공공서비스가 디지털 화면 하나로 모이면서, 그 화면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문제가 함께 드러났다.
디지털 격차는 기기나 인터넷망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는 1차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복잡한 공공 플랫폼과 AI 서비스를 다룰 줄 몰라 생기는 2차적 사용 격차로 번지고, 나아가 디지털이 아닌 방식을 고를 권리 자체가 사라지는 3차적 선택 박탈로까지 이어진다. 창구에 사람이 있어도 접수는 앱으로만 하라는 안내를 받는 순간, 선택지가 하나였던 사람은 그 하나마저 잃는다.
궈청강(Guo, 2026)의 연구는 헌법상 평등권을 근거로, 디지털 취약계층을 위한 권리를 세 겹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에 접근할 권리,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그 기술에 적응할 권리, 그리고 디지털 방식을 강요받지 않고 오프라인 행정 수단을 고를 수 있는 거부권이다. 세 번째 권리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기술을 잘 쓰도록 돕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기술을 쓰지 않을 자유까지 법으로 지켜야 한다는 관점이다.
신 등(Xin et al., 2026)이 중국 여러 성의 지능형 커뮤니티 정책을 PMC 지수로 평가한 연구는, 고령층의 디지털 보건 리터러시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와 고령층 전용 행정 인터페이스를 얼마나 손봤는지를 정책 성과의 핵심 지표로 본다. 실제 현장의 모습은 청두시 청화구 보화가도의 '싱위허(兴与和)' 플랫폼에서 확인된다(Zhang, 2026). 이 플랫폼은 디지털 화면만으로 문제를 풀지 않는다. 오프라인 서비스 창구를 그대로 남겨두고, 그 창구와 디지털 플랫폼을 연결하고, 현장 자원봉사자와 봉사 포인트 제도를 엮어 고령층의 행정 업무를 돕는다. 화면을 없애는 대신 화면 옆에 사람을 세워둔 방식이다.
싱가포르는 국가 디지털 전략인 스마트 네이션 2.0을 추진하면서, 기술을 밀어붙이는 일과 사회적 포용을 함께 놓았다. 정부는 지역사회 현장에 '디지털 대사(Digital Ambassadors)'를 배치해, 전통시장과 주민센터와 경로당을 돌며 고령층에게 싱패스(Singpass) 사용법, 결제망 페이나우(PayNow) 쓰는 법, 피싱과 사이버 범죄를 피하는 법을 일대일로 가르친다. IMDA가 운영하는 디지털 포 라이프 사업은 이런 활동을 하나로 묶는 상위 틀이다. 2025년 열린 디지털 포 라이프 페스티벌에는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시민단체를 합쳐 110곳 넘는 기관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고령층의 정보 격차는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위험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에,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는 화면의 버튼과 글자 수를 줄이고 음성으로 조작하는 방식을 더하고 오프라인 지원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진다.
칼사다와 에이사기레(Calzada & Eizaguirre, 2025)의 연구는 생성형 AI가 번역과 요약, 음성 안내 기능으로 디지털 취약계층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보면서도, 그 기술 자체를 다루려면 또 다른 학습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함께 짚는다. 새로운 도구는 격차를 메우는 다리이면서 동시에 넘어야 할 문턱이기도 하다. 엘셰이크 등(El-Sheikh et al., 2026)이 여러 나라의 고령친화 스마트시티 거버넌스를 비교한 연구는, 정책 문서에 고령친화라는 표현이 들어간 도시일수록 실제 예산과 인력 배치도 그에 맞춰 늘어나는 경향을 확인했다.
장애가 있는 시민의 참여도 따로 다뤄야 할 과제다. 브리쿠트 등(Bricout et al., 2021)의 연구는 장애인이 스마트시티 기술의 이용자로만 머물지 않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함께해야, 서비스가 완성된 뒤에 접근성을 뒤늦게 손보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짚는다. 콜로투치키나 등(Kolotouchkina et al., 2024)이 여러 도시의 스마트시티 정책을 검토한 연구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기반시설 투자가 늘어난다고 디지털 불평등이 저절로 줄지는 않으며, 기기와 통신망을 깔아 놓는 일과 그것을 실제로 쓸 수 있게 만드는 일은 다른 차원의 과제라는 뜻이다.
디지털 격차를 메우는 일과 나란히, 스마트시티 거버넌스는 시민을 데이터를 제공하는 쪽에서 정책을 함께 만드는 쪽으로 옮기는 흐름을 보인다. 유엔인간정주계획(UN-Habitat)이 2025년 내놓은 사람 중심 스마트시티 국제 지침은 디지털 기술이 시민의 권리와 공정성, 공동체의 가치를 키우는 방향으로 통제되어야 한다고 못박는다.
시민 참여가 얼마나 깊은지는 아른슈타인(Arnstein, 1969)이 제시한 시민 참여 사다리 모델로 가늠할 수 있다. 사다리의 아래 칸은 정부가 정보를 일방적으로 알려주거나 설문지를 돌리는 수준이고, 위 칸으로 올라갈수록 시민이 계획을 함께 세우고 예산을 나누는 권한까지 손에 쥔다. 초기의 스마트시티가 정보 제공과 설문에 머물렀다면, 최근의 스마트시티는 시민이 리빙랩에서 기술을 직접 시험하고 예산 배분에 참여하는 위쪽 칸을 지향한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이 진행한 마스터플랜 2025 수립 과정은 사다리의 위 칸에 가까운 사례다. 2023년 10월부터 시작된 이 과정에는 약 22만 명이 참여했다. 전시와 대화, 포커스그룹, 설문과 아이디어 공모전을 거쳐 의견을 모았고, 계획은 2025년 12월 확정됐다. 도시 계획이라는 전문 영역에 이만큼 많은 시민이 이름을 올린 사례는 흔하지 않다.
칼사다(Calzada, 2021)는 이런 흐름을 '스마트시티 시민권(smart city citizenship)'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시민을 서비스를 받는 이용자가 아니라 도시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대해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는 관점이다.
바르셀로나는 오픈소스 기반 시민 참여 플랫폼 '데시딤(Decidim)'을 운영해, 시 예산의 배분과 도심 재개발 계획에 시민이 직접 안건을 올리고 투표하도록 한다. 로마 역시 디지털 플랫폼으로 참여 예산제를 도입했다. 마테이 등(Mattei et al., 2024)이 두 도시의 참여 예산제를 비교한 연구는, 플랫폼을 갖추는 일과 시민이 실제로 그 플랫폼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고 짚는다. 보르베르흐 등(Voorberg et al., 2014)이 여러 나라의 사례를 검토한 연구에 따르면, 공동 창작은 시민이 아이디어를 내는 공동 설계 단계에서 시민이 서비스 운영까지 맡는 공동 집행 단계로 갈수록 참여의 밀도가 높아지지만, 실제로 공동 집행 단계까지 이른 사례는 많지 않다.
일본의 후지사와 지속가능한 스마트타운 프로젝트는 주민과 지자체, 파나소닉 같은 민간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 구조를 세웠다. 에너지 자립과 생활 인프라를 운영하는 규칙을 주민 공동체가 계속 다시 짜고 고쳐 나가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과 자연어 처리 기술이 시민 참여 플랫폼에 접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연어 처리 기술은 시민이 자유롭게 적은 민원과 아이디어, 정책 제안을 의미별로 묶고 정리하는 일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행정 용어를 몰라도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적으면 되는 구조는 참여의 문턱을 낮출 잠재력을 지닌다. 다만 이런 기술을 실제로 대규모 행정 절차에 배치해 운영한 사례가 어느 도시에서 어떤 규모로 검증됐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암스테르담과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여러 도시는 '디지털 권리를 위한 도시 연합'을 만들어 데이터 주권과 알고리즘 투명성, 디지털 포용성의 기준을 함께 세우고 나누고 있다.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일과 시민이 정책 결정에 실제 권한을 갖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처럼 보이지만, 두 가지가 함께 갖춰지지 않으면 어느 한쪽도 오래가지 못한다. 화면을 다룰 줄 아는 사람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참여 구조라면, 그 참여는 애초에 절반의 시민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근거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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